10년 전 베이글 가게 아르바이트의 추억
당시 인기 없었으나 '건강한 식사빵'으로 각광
'저당 베이글'까지 등장하며 시장 판도 커져

먹고, 입고, 바르는 모든 것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건강'을 빼놓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코로나19가 우리 사회에 건강이란 화두를 던졌기 때문인데요. 누구나 건강한 생활을 꿈 꾸는 요즘. 독자의 건강한 생활을 돕고자 보람차게 뜁니다. <편집자 주>

런던베이글뮤지엄 안국점 내부 [사진 = 김보람 기자] 
런던베이글뮤지엄 안국점 내부 [사진 = 김보람 기자] 

얼마 전 북촌 골목을 지나다 문 앞에 긴 줄이 늘어선 런던베이글뮤지엄이 보였다. 그날은 평일 오후였고, 여긴 주말엔 1~2시간 대기가 기본인 요즘 '힙'한 빵집이라 하니 나도 줄 서 봄직 만 하단 생각이 들었다. 이미 수년 전부터 유행했지만 엄두가 나질 않아 도전하지 못했던 빵집이다. 

그렇게 받은 대기 번호는 476번. 14번째 순서였다. 포장 전용 줄이라 그런지 15분 만에 입장할 수 있었다. '이런 게 요즘 빵집이다'라는 걸 알려주는 듯 런던 냄새를 마구 풍기는 소품들,그 런던이란 콘셉트에 충실한 직원들, 매장을 울리는 큰 음악 소리, 각종 재료로 변주한 휘황찬란한 베이글들. 분위기에 압도되고 말았다. 테이블도 모두 만석이었다.

베이글 4개와 작은 크기의 크림치즈 2개를 골랐다. 2만7900원. 치킨 한 마리에 맞먹는다. 이래서 베이글을 '식사빵'이라 하는 건가. 물론 명성대로 맛은 더할 나위 없이 100점이었다. 내가 가끔 그리워 하는, 10년 전 먹었던 베이글의 맛과 질감을 떠오르게 했다.   

런던베이글뮤지엄 안국점 내부 [사진 = 김보람 기자] 
런던베이글뮤지엄 안국점 내부 [사진 = 김보람 기자] 

그러니까 10년 전 쯤 베이글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신세계백화점 지하 푸드코트에 있는, 미국에 본사를 둔 포장 전문 가게였다. 그때만 해도 베이글은 지금처럼 인기 있는 빵이 아니었다. 어쩌면 '무미(無味)'하다 느껴질 만큼 담백하고 두툼한 빵. 그런데도 베이글 하나 가격이 당시 2000~3000원 정도였으니 저렴한 편도 아니었다. 바로 맞은 편 항상 북적이는 고급 빵집에 진열된 호화로운 빵들에 맞설 매력이란 그저 투박함이었다. 

당시엔 베이글이 대중적이기보단 마니아를 데리고 있는 빵으로 느껴졌다. 늘 바로 앞 빵집이 붐비는 데 비해 드문드문, 낯 익은 사람들이 와서 베이글 몇 개씩을 포장해가곤 했다. 집에 식사를 챙겨 줘야 할 사람이 있을 것 같은 중년의 여성이 많았다. 늦게까지 팔리지 않은 빵을 묶어 파는 마감 할인 시간에야 손님이 조금 늘어나는 빵집이었다.  

지금은 한국에서 철수했을 만큼 당시 인기를 타진 못했으나, 그때도 베이글은 분명 맛있는 빵이었다. 씹을수록 달고 쫄깃했고 기름진 빵을 먹을 때완 다르게 속이 편안했다. 각종 크림치즈를 마음대로 조합해 먹는 재미는 덤이다. 이제 막 수능시험을 마치고 사회에 겨우 발을 들인 20살 아르바이트생이 먹기엔 고급스러웠던 빵. 당일 폐기된 베이글을 한가득 들고 집에 돌아와 맘껏 먹을 때면 하루의 수고가 풀리곤 했다. 

런던베이글뮤지엄에서 기자가 구매한 베이글들 [사진 = 김보람 기자] 
런던베이글뮤지엄에서 기자가 구매한 베이글들 [사진 = 김보람 기자] 

기자에겐 이런 남다른 추억의 베이글이 이제 진화하고 있다. 한국인은 밥심도 옛말, 빵심으로 사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건강한 식사빵'으로 각광받는 것이다. 질병관리청 통계에 따르면 국민 1인당 하루 빵 섭취량은 2012년 18.2g에서 2020년 19.4g으로 6.6% 증가했다. 반면 통계청 조사 결과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2012년 69.8kg에서 2020년 57.7kg으로 17.3% 줄었다. 특히 베이글은 다른 빵 대비 지방, 당류 함량이 적어 부담이 덜해 건강하다고 여겨진다. 

빵 중에서도 건강한 빵, 베이글을 더 건강하게 만드려는 시도도 계속된다. '저당 베이글'까지 등장했다. 지난달 초 풀무원은 저당 베이글로 식사빵 시장에 출사표를 냈다. 100g당 당류 함량이 5g 미만이라 식품표시광고법상 저당 기준을 충족한다. 풀무원에 따르면 대체당인 알룰로스를 사용해 저당을 구현하면서 베이글 고유의 맛을 냈다. 기본적인 어니언 맛과 크림치즈가 들어간 대파, 바질토마토 3종이다. 

기자도 풀무원 저당 베이글을 먹어봤는데 전문점 못지 않은 식감과 맛이 인상깊었다. 특히 크림치즈가 미리 발라져 있는 게 좋다. 당시 요리에 손이 익숙하지 못한 20살 아르바이트생은 크림치즈를 바르기 위해 베이글 하나를 반으로 가르는 데도 진땀을 뺐으니 말이다. 냉동 베이글을 전자레인지에 1분 30초 간 데우면 되는데, 빵은 따뜻해지고 크림치즈는 여전히 차가워 맘에 들었다. 

풀무원 저당 베이글 [사진 = 김보람 기자] 

런던스타일부터 저당까지. 베이글은 한동안 변신을 거듭하며 식사빵으로의 지위를 공고히 할 전망이다.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플레인형 양산빵(식빵, 베이글 등)의 국내 시장 규모는 지난 2018년 약 796억원에서 지난해 약 1598억원으로 2배가량 늘었다. 업계 관계자는 "한 끼를 합리적인 가격에 간편하게 해결할 수 있는 식사 대용 빵에 대한 소비자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러 꾸미지 않은 수수한 옷차림에도 소재와 디자인에서 고급스러움을 물씬 풍기던 베이글 가게의 손님들. 내게 베이글의 첫인상은 그랬다. 겉모습이 화려하진 않아도 언제나 은은한 매력으로 진수를 보여주던 빵. 이젠 베이글의 색다른 변신도 기대해볼 수 있을 테니, 무척이나 반가운 식사빵의 유행이다. 

풀무원 저당베이글 3종 [사진 = 풀무원] 
풀무원 저당베이글 3종 [사진 = 풀무원] 

 

매경헬스에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억울한 혹은 따뜻한 사연을 24시간 기다립니다.
이메일 jebo@mkhealth.co.kr 대표전화 02-2000-5802 홈페이지 기사제보

관련기사

저작권자 © 매경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