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살자. 2. 숨 쉬자.
우연히 방문한 집, 초등학생 책상 위에 적힌 글귀가 지금도 선명하다. 그 아이는 올해 중학생이 되었지만, 여전히 곰팡이와 해충이 가득한 집에서 살아간다. 그의 바람은 단 하나였다.
"곰팡이만 없었으면 좋겠어요. 해충만 안 나왔으면 좋겠어요."
단순한 불편이 아니었다. '살고 싶다'는 절박한 외침이었다.
부산의 빈곤아동 실태조사, 서울의 복지사각지대 인터뷰, 전국의 고독사·은둔형 가구 사례 등에서 반복되는 목소리.
"주거환경이 바뀌어야, 사람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현장에서 고위험 가구 6곳을 직접 진단할 기회가 있었다. 그중 3가구만 예산을 지원받았고, 결과는 분명했다.
지원된 가구는 알레르기 증상이 완화되고 심리적 안정이 나타났다. 지원받지 못한 3가구는 1년 안에 모두 사망했다. 낙상 위험 진단을 받았던 어르신은 두 달 뒤 실제 낙상사했고, 결로와 해충, 추위 속에 살던 두 분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는 우연이 아니라, 기준 없는 정책 시스템이 만든 필연적 죽음이다.
현행 주거기준은 '사람이 살만한', '쾌적한' 수준에 그친다. 지나치게 모호해, 정성적 평가나 소득기준에 의존해 가구를 선별하고, 정작 가장 위험한 곳이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위험도와 상관없이 자격만으로 지원이 결정되다 보니, 주거는 매년 재발하거나 악화된다. 반대로 개선이 필요 없는 곳에 예산이 투입되는 상황도 반복된다. 어떤 가구는 10만 원이면 충분하지만, 어떤 곳은 100만 원이 들어도 해결되지 않는다.
2019년부터 사회적기업과 전문가들이 모여 기존 건설업 위주 주거개선사업을 과학적이고 구조적인 모델로 재구성해왔다. 6년간의 수행 데이터를 바탕으로, 곰팡이·해충·화재·낙상 등 위험 요소별 주거 위험도를 계량화한 '최저주거품질측정지표'를 개발했다.
2022년과 2024년에는 전국의 주거복지 담당자, 연구자, 기업 등 60여 명이 참여한 '사회적 대화'가 두 차례 열렸다. 결론은 하나였다.
"기준이 있어야 구조가 가능하다."
중복지원을 줄이고 예산 낭비를 막기 위해, 데이터를 통합한 시스템 구축과 기관 간 공유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이 모였다.
2025년 6월, '연구'를 포함한 주거환경개선 계약이 체결되었고, 우리는 11월 다시 현장으로 나간다. 우리가 제안하는 기준은 단순한 기술 진단이 아니다. 생명과 직결되는 물리적·생물학적·심리적 위험 요소를 수치화하고, 계량하며, 분류하는 시스템이다.
이 기준으로 위험을 조기에 감지하고, 선제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주거안전망이 반드시 필요하다.
더 이상 '선정기준이 없어서'라는 말로 죽음을 설명해서는 안 된다. 주거의 위험을 방치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죽음 이후가 아니라, 죽기 전에 개입할 수 있는 사회. 그런 기준을 갖춘 사회야말로 진정한 공동체다.
이제는 선택이 아니다. 기준이 없으면 생명이 사라진다. 그리고 우리는, 그 기준을 만들고 지켜낼 자격이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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