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은 보안 규제, 산업 현실과 충돌…제약바이오 업계 "지금은 해제할 때"

토론회
보툴리눔 독소제제 생산기술의 국가핵심기술 지정이 산업 보호보다 억제로 작용한다는 비판 속에, 국회 토론회에서 규제 완화와 제도 개선 필요성을 집중 제기했다. [사진=이상훈 기자]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 핵심 기술로 평가받는 보툴리눔 독소제제 생산기술(균주 포함)이 정부의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된 지 10여 년이 지났지만, 이 기술을 둘러싼 논란은 지금 가장 뜨겁다. 

기술유출 방지를 이유로 유지해온 이 규제에 대해 업계에서는 오히려 산업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시장의 공정성을 해치는 장벽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

29일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열린 'K-바이오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국가핵심기술 보호제도 개선방안' 토론회에서는 이러한 논란을 정면으로 다뤘다. 

이날 행사에는 강승규 국민의힘 의원, 허종식 더불어민주당 의원, 그리고 한국시민교육연합 등이 공동 주최자로 참여해 정치권과 산업계, 학계 의견을 한데 모았다.

토론회에서는 '보호가 아닌 억제'라는 문제의식이 자리했다. 발제를 맡은 이상수 한국시민교육연합 대표는 "보툴리눔 독소제제 생산기술의 국가핵심기술 지정은 기술유출 방지라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는 기존 선도 기업의 보호 장치로 기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규제가 신규 기업에게는 중복규제와 진입장벽으로 작용하고, 산업 전반의 글로벌 확장을 가로막고 있다"고 덧붙였다.

발제 중인 이상수 한국시민교육연합 대표. [사진=이상훈 기자]
발제 중인 이상수 한국시민교육연합 대표. [사진=이상훈 기자]

지정 과정의 절차적 정당성에도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해당 기술이 처음 지정된 2010년과 이후 2016년 균주까지 포함하며 재지정된 과정에서 산업통상자원부는 행정예고 없이 절차를 진행했고, 관련 업계 및 전문가 의견 수렴도 충분하지 않았다는 것. 

당시 산업부는 위원 명단과 회의록 공개 요청에도 응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깜깜이 지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제약바이오업계 반응도 부정적이다. 한국시민교육연합이 지난 9월 국내 제약사 18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무려 82.4%의 기업이 국가핵심기술 지정 해제에 찬성했다. 이는 2024년 초 한국제약바이오협회의 조사 당시 찬성률인 70.5%보다도 12%포인트 이상 증가한 수치다. 업계 전반의 분위기가 규제 완화 쪽으로 기울고 있음을 시사한다는 게 이상수 대표 얘기다.

또 이승현 건국의대 교수는 '국가핵심기술 제도의 타당성 검토: 보툴리눔 톡신 사례를 중심으로' 발제에서 "보툴리눔 독소제제는 이미 복수의 법률로 철저히 관리되는 기술로, 국가핵심기술 지정까지 하는 것은 중첩규제로 산업 생태계를 위축시킨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중삼중 규제는 연구자들의 자유를 제한하고 신생 기업 진입을 막아, 결국 한국 바이오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발제 중인 이승현 건국의대 교수. [사진=이상훈 기자]
발제 중인 이승현 건국의대 교수. [사진=이상훈 기자]

해외 사례와 비교해도 우리나라 규제는 과도하다는 평가다. 미국, 영국, EU 등은 보안 관리를 철저히 하되, 의약품의 상용화와 기술 개발은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있다. 중국은 오히려 국가 차원에서 바이오 산업 육성을 전폭 지원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기술 수출과 해외 진출 시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절차적 제약이 여전히 존재한다.

정치권에서도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강승규 의원은 “반도체와 ICT 산업의 성공에 이어 K-바이오가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는 시점에서, 규제로 인한 발목잡기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하며 “보호와 개방의 균형을 찾는 새로운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허종식 의원도 “국가의 역할은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동시에, 산업이 세계와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데 있다”고 언급했다.

반면 정부는 보안 필요성을 여전히 강조하고 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축사에서 “보툴리눔 독소제제는 민감 기술인 만큼 관리가 필요하나, 산업 성장 지원을 위해 규제 재점검도 병행하겠다”고 전했다.

발제 발표에 이어 패널들이 토론를 이어가고 있다. [사진=이상훈 기자]
발제 발표에 이어 패널들이 토론를 이어가고 있다. [사진=이상훈 기자]

이번 토론회를 계기로 시민단체와 업계는 보툴리눔 독소제제 생산기술의 국가핵심기술 지정 해제를 정부에 공식 요청할 예정이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이미 지난해 관련 의견서를 제출했으며, 현재 산업부는 해제 여부를 재검토 중이다. 이 과정에서 제도적 투명성과 절차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 과제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업계 한 관계자는 "보툴리눔 톡신 기술은 이미 세계 시장에서 상용화 중인 기술이며, 국내 기업의 경쟁력도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며 "이제 필요한 것은 보호와 경쟁, 규제와 혁신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내는 정부의 정책적 판단"이라고 말했다.

이어 "K-바이오가 기술 강국으로서 세계 무대에서 더 큰 성장을 이어가기 위해선, 시대 변화에 맞는 규제 환경 조성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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