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지는 자원, 지속 가능한 해결책으로 전환 '변환 경제' 성공 사례 제시
꽃가루가 가진 알레르기 유발 가능성·가공 어려움 등 근본적 문제 해결
"연구실 성과가 상용화 통해 실질적 임팩트 창출하는 것이 중요"
바이오 벤처인 루카에이아이셀의 창업자이며 싱가포르 난양공대(NTU) 재료공학과 석좌교수이자, 재료 과학 및 전염병 의학 분야의 선구적인 학자로 꼽히는 조남준 교수는 '버려지는 재료'에서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그의 연구팀은 흔히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계절의 불청객'으로 여겨지던 꽃가루의 견고한 외벽을 활용해 플라스틱을 대체하고, 산호초를 살리는 혁신적인 바이오 소재를 개발해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본지는 조남준 교수를 직접 만나 그의 학문적 여정과 꽃가루 기반 기술의 현재, 그리고 인류가 직면한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그의 비전을 심도 있는 대담 형식으로 담아냈다.
재료공학·화학공학·의학을 넘나들며 연구활동을 해왔다. 학제 간 연구 여정이 꽃가루 기반 바이오 소재 연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그동안 다양성을 바탕으로 여러 분야의 지식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융합하는 데 초점을 맞춰왔다. 이러한 접근 방식이 꽃가루 연구와 같은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재료공학적 지식 덕분에 꽃가루 외벽이라는 자연 소재의 근본적인 물성과 구조를 이해할 수 있었다. 화학공학은 연구실에서 발견한 작은 반응을 효율적이고 안전한 대량 생산 공정으로 확장하는 데 필수적인 기반이 됐다.
스탠포드 의과대학에서의 경험은 꽃가루를 단순한 산업용 소재가 아닌 인체에 직접 적용할 수 있는 헬스케어 및 의약품 분야의 혁신적인 재료로 바라보는 시야를 열어줬다. 학제 간 융합은 제 연구 철학인 '변환 경제(Cross Economy)'의 핵심이기도 하다. 변환 경제는 폐기물을 포함한 쓰이지 않는 부산물을 재료 혁신을 통해 새로운 산업적 기회를 창출하는 패러다임이다.
꽃가루는 그 자체로 자연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동시에 풍부하게 존재하지만, 대부분은 버려지거나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불청객으로 여겨진다. 저의 연구는 이러한 '버려지는 자원'을 지속가능한 해결책으로 전환하는 변환 경제의 성공 사례를 제시하는 것이다.
제 학문적 여정은 우연히 여러 분야를 오간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인류와 환경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융합적 솔루션을 찾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꽃가루가 어떻게 플라스틱 대체 소재로 변신할 수 있었나. 핵심 기술인 '꽃가루 마이크로젤'은 무엇이며, 어떤 원리로 만들어지는 것인가?
![꽃가루의 가장 바깥쪽 외벽은 자연계에서 가장 단단한 생체 고분자 중 하나인 스포로폴레닌으로 구성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https://cdn.mkhealth.co.kr/news/photo/202509/75091_83225_1827.jpg)
꽃가루는 '식물의 다이아몬드'라는 별명을 갖고 있을 만큼 견고하고 독특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꽃가루의 가장 바깥쪽 외벽(exine)은 자연계에서 가장 단단한 생체 고분자 중 하나인 스포로폴레닌(sporopollenin)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 단단함 때문에 기존에는 가공이 매우 어려웠다.
저희 연구의 핵심은 이 '경직성'이라는 한계를 화학적 공정으로 극복한 것이다. 꽃가루 마이크로젤을 만드는 공정은 크게 두 단계로 구분된다.
먼저, 꽃가루 외벽에 붙은 지방질과 알레르기 유발 단백질을 유기 용매(아세톤)로 제거하는 '탈지(defatting)' 과정을 거친다. 알레르기의 주범인 단백질은 꽃가루 내부(protoplast)에 존재하기 때문에, 이 전처리 과정을 통해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
다음으로, 탈지된 꽃가루를 알칼리성 수용액에 넣고 두 번에 걸쳐 처리한다. 첫 번째는 섭씨 80도에서 2~4시간 동안 짧게 반응시켜 외벽의 표면 화학 구조를 변형시키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거치면 꽃가루 입자가 물을 쉽게 흡수할 수 있게 된다.
이후 섭씨 15~25도의 비교적 낮은 온도에서 짦은 시간을 배양하는 '가수분해적 분해(Hydrolytic Degradation)' 과정을 거치면, 단단했던 꽃가루 입자가 잼처럼 유연하고 가공하기 쉬운 마이크로젤로 변형된다.
이 기술의 가치는 단순히 새로운 소재를 발견했다는 데 있지 않다. 꽃가루가 가진 알레르기 유발 가능성과 가공의 어려움이라는 두 가지 근본적 문제를 화학적 공정으로 동시에 해결함으로써, 자연계에 풍부하게 존재하는 '버려지는 부산물'을 고부가가치 원료로 전환시킨 것이다.
'산호초를 살리는 친환경 선크림' 연구가 주목받는다. 기존 제품과 어떻게 다르며, 어떤 이점이 있는가.
![조 교수 연구팀은 '동백꽃 꽃가루'로 만든 선크림이 피부 온도를 낮추고 해양 생태계에 해롭지 않다는 연구 결과로 이목을 끌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https://cdn.mkhealth.co.kr/news/photo/202509/75091_83227_237.jpg)
산호초는 해양 생태계의 허파와 같은 역할을 한다. 하지만 기존 상용 선크림에 흔히 사용되는 옥시벤존(Oxybenzone, BP-3)이나 벤조페논-2(BP-2) 같은 화학 성분이 바다로 유입되면 산호초의 유전자를 손상시키고 백화 현상을 유발해 치명적인 피해를 준다.
매년 약 6000톤에서 1만4000톤의 선크림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고려하면 이는 심각한 문제다. 저희가 개발한 꽃가루 기반 선크림은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한다. 실험 결과, 상용 선크림에 노출된 산호초는 불과 2일 만에 산호 백화로 죽음에 이르렀지만, 꽃가루 선크림을 사용한 경우에는 60일이 지나도 건강한 상태를 유지했다.
기존 제품과 동등한 수준의 SPF 30(자외선 97% 차단) 성능을 확보했을 뿐만 아니라, 꽃가루가 가시광선~근적외선 스펙트럼의 에너지를 적게 흡수하는 자연적인 특성 덕분에 피부 온도를 약 5~9°C 낮춰주는 쿨링 효과도 제공한다. 이러한 쿨링 효과는 소비자의 피부에 직접적인 효용을 제공하는 '기능성 제품'으로 시장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게 한다.
선크림 외에 꽃가루 마이크로젤이 활용될 수 있는 분야들이 있는가.
꽃가루 마이크로젤의 핵심은 유연하고 물에 반응하는 특성, 그리고 친수성·소수성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물성 덕분에 다양한 분야에 적용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 몇 가지를 말씀드리겠다.
첫 번째는 오일 흡수 스펀지다. 해바라기 꽃가루를 이용해 만든 소수성 스펀지는 해양 기름 유출과 같은 수질 오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이 스펀지는 기름을 선택적으로 흡수하는 능력이 뛰어나며, 흡수 용량이 상용 오일 흡수제와 비슷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두 번째는 3D 프린팅 바이오 잉크다. 기존 하이드로젤 기반 바이오 잉크는 출력 후 모양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다. 꽃가루 마이크로젤을 혼합하면 출력물이 견고한 구조를 유지해 조직 재생을 위한 '스카폴드(scaffold)'나 상처 드레싱 패치, 또는 안면 마스크와 같은 생체의학 분야의 3D 프린팅 소재로 활용될 수 있다.
마지막은 약물 전달 시스템이다. 꽃가루 외벽인 스포로폴레닌은 위장 내 산성 환경에서도 안정적으로 형태를 유지하며, 점막에 잘 부착되는 표면 특성을 갖는다. 이 때문에 꽃가루 외벽에 약물을 담아 원하는 표적에 서서히 방출하는 약물 전달체로 활용할 수 있다. 특히, 기존 시스템으로는 체내 흡수가 어려웠던 단백질이나 핵산과 같은 고분자 약물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강점이 있다.
현재의 회분식(batch process) 공정을 어떻게 극복해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할 계획인가.
현재 저희 연구실에서 진행하는 꽃가루 마이크로젤 제조 공정은 회분식으로 진행되므로 생산량과 효율성 측면에서 한계가 명확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은 바로 '연속식 흐름 반응기(continuous flow reactor)' 기술이다.
연속식 반응기는 소량의 반응물을 튜브나 미세 반응기에 지속적으로 투입해 최종 산물을 연속적으로 얻는 방식이다. 이 기술을 도입하면 여러 가지 이점을 얻을 수 있다. 첫째, 소량의 재료로 공정을 진행하므로 발열 반응과 같은 위험한 과정을 훨씬 안전하게 제어할 수 있다. 둘째, 반응 시간, 온도, 압력 등 핵심 변수를 정밀하게 조절해 제품의 품질과 수율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일련의 공정이 연구실 규모에서는 가능하지만, 대량 생산 체계로 전환하려면 고도화된 전용 장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존의 추출기나 화학 처리 장비만으로는 균일한 품질을 확보하기 어렵고, 처리 용량에도 한계가 따르기 때문에 반응 조건을 정밀하게 제어하면서 대량의 꽃가루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자동화 모듈 등이 요구된다.
저희는 난양공대 창업 지원팀인 NTUitive를 통해 이미 기술 특허 출원을 완료했고, 현재 루카에이아이셀과 협력해 이 기술을 대량 생산하고 상용화하기 위해 꽃가루 원료 가공 전문 장비를 설계하고 개발 중이다.
새로운 소재가 화장품이나 의약품으로 상용화되기까지는 여러 규제적 장벽을 넘어야 한다. 꽃가루 기반 소재는 어떤 관문을 통과해야 하나.
새로운 원료가 화장품에 사용되려면 한국의 경우 식품의약품안전처(MFDS)의 안전성 검토와 고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유럽연합(EU) 또한 발암성, 변이원성, 생식독성(CMR) 물질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2026년까지 동물실험 금지 로드맵을 마련할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환경과 인체에 무해하면서 동물실험을 거치지 않은 소재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저희가 개발한 공정은 꽃가루 알레르기 유발 물질인 내부 단백질을 제거한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성과를 넘어 규제 당국의 안전성 평가를 통과하고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다. 친환경적이고 윤리적인 생산 방식을 증명하는 것은 상용화를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 될 것이다.
궁극적 목표와 이 연구가 그리는 미래 비전이 궁금하다.
이 연구가 단순히 하나의 제품을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꽃가루와 같이 많은 자연이 주는 선물을 지식이 없다는 이유로 'Waste'라고 생각을 하고 쓰지 않는다. 꽃가루 기반 기술은 자연계에 풍부하게 존재하는 '버려지는 재료'를 인류가 직면한 미세 플라스틱 문제나 해양 오염과 같은 환경 문제의 해결책으로 전환하는 '변환 경제' 모델의 성공 사례다.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인류와 지구 모두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지속가능한 실제 세계 솔루션"을 개발하는 것이다. 연구실의 성과가 논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상용화를 통해 실질적인 임팩트를 창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과학자들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이다. 꽃가루 한 톨이 거대한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인류가 지구와 공존하는 새로운 길을 열어줄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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