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첫 양자 규제 의존 프로그램…한국, 다자 협력에 머물러 속도 경쟁 불리
![말레이시아와 중국이 세계 최초로 체외진단기기(IVD) 규제 상호인정 시범 프로그램을 가동한 가운데, 한국은 양자 협력 부재로 규제 속도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https://cdn.mkhealth.co.kr/news/photo/202508/74907_82891_2232.jpg)
말레이시아와 중국이 세계 최초로 체외진단기기(IVD) 상호 신뢰 기반 규제 의존 프로그램 시범 운영에 들어가면서, 한국 기업들에게는 기회이자 위기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말레이시아 현지에 생산 거점을 확보한 기업이라면 중국 시장으로 진입하는 새로운 통로를 열 수 있지만, 한국 내 허가 절차가 여전히 수개월에서 1년 가까이 걸리는 현실은 속도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를 키우고 있는 것.
업계에서는 "규제 혁신 없이는 한국 기업만 느린 길을 걷게 된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말레이시아 의료기기청(MDA)은 중국 국가약품감독관리국(NMPA)과 협력해 지난 7월 30일부터 9월 30일까지 'Medical Device Regulatory Reliance Programme'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이번 프로그램은 양국이 서로의 허가 결과를 신뢰해 심사 기간을 단축하는 방식으로 설계했다. 중국 제조업체는 말레이시아의 'Verification Pathway'를 통해 약 30 영업일 만에 허가 절차를 마칠 수 있고, 말레이시아 제조업체는 중국의 'Green Channel'을 활용해 60 영업일 내 승인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조건은 까다롭다. 참가 기업은 반드시 자국 내 제조시설을 직접 보유·운영해야 하며, 브랜드만 바꿔 판매하는 '리브랜더(rebrander)' 같은 제3자 사업자는 참여할 수 없다. 이번 시범 운영에서 접수 가능한 신청은 각국별 최대 6건으로 제한해 총 12건만 처리한다.
대상 품목은 중국의 경우 지방 의료제품관리국(MPA) 승인 Class II IVD와 NMPA 승인 Class III 기기, 말레이시아는 MDA 승인 Class B·C·D IVD로 한정한다. 특히 중국산 IVD가 말레이시아로 진입할 때 희귀질환용이나 혁신 기기는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전문가들은 이번 합의를 "의약품 분야를 넘어 의료기기에서도 최초로 국가 간 규제 상호인정이 구현된 사례"라고 평가한다.
한국 상황은 다소 다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혁신의료기기 지정제도와 우선심사제도 등으로 국내 절차를 가속화하고 있으나, 다른 나라의 허가 결과를 직접 연계하는 양자 규제 의존 프로그램은 추진한 바 없다.
한국은 국제의료기기규제당국자포럼(IMDRF)과 아시아 규제조화포럼(GHWP) 활동으로 다자 협력에 주력하고 있지만, 말레이시아-중국처럼 실질적인 양자 상호인정 체계는 전무한 실정이다.
이로 인해 한국 기업만 상대적으로 긴 심사 절차를 감수해야 하는 '느린 길'을 걸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한국에서 IVD를 포함한 고위험 등급 의료기기를 허가받는 데는 임상자료 제출 여부, GMP 심사, 신의료기술평가 등을 고려하면 수개월에서 9~12개월까지 걸릴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프로그램은 단순한 행정 편의가 아니라 규제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제도"라며 "한국도 혁신 없이 머뭇거리면 기업만 더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도 의료기기 수출 확대를 위해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의료기기 산업 글로벌 진출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으며, 식약처는 첨단재생바이오법 기반 특구 지정과 국제 임상 연계 확대를 준비 중이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지금처럼 다자 협력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미국·EU 등 주요 시장과의 양자 상호인정 체계를 서둘러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번 시범운영은 9월 말 종료지만,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정식 제도로 확대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모델이 아시아 전역으로 확산할 여지도 크다고 보고 있다. 세계 최초의 의료기기 상호인정 체계가 본격화하는 가운데, 한국이 규제 혁신과 국제 협력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향후 K-의료기기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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