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조선업 현장… 베트남·네팔·우즈벡 등 인력으로 대체
외국인 근로자 보호 '안전교육'… 건강하게 일할 권리 보장

대한민국의 고도성장 이면에는 수많은 근로자들의 희생이 있었다. 철야 근무로 인한 과중한 업무, 빈번한 산업재해, 그리고 직장 내 괴롭힘 둥이 여전히 근로자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실제로 매년 수백 명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고, 우울증·불안장애·자살이 발생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근로 환경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이제는 '근로자 건강이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인 시대'다. 매경헬스는 근로자들의 건강 관리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해외 우수 사례들을 통해 국내 기업들의 근로자 건강관리와 복지 실태의 현주소를 파악하고 개선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HD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한화오션 등이 고용 중인 직영·협력업체 외국인 근로자 고용 규모는 1만 명을 웃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HD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한화오션 등이 고용 중인 직영·협력업체 외국인 근로자 고용 규모는 1만 명을 웃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복지가 '사람을 보호하는 사회의 최소한의 안전망'이라면, 이주노동자가 그 밖에 있다는 건 사회의 한쪽이 비어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보호망이 없으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 건 산업재해의 집중이다. 고용노동부 통계를 보면 외국인 근로자의 산업재해율이 내국인보다 두 배 이상 높게 나타난다. 언어 장벽과 제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위험한 작업에 투입되다 보니, 다칠 가능성 역시 커질 수 밖에 없다"

이인정 호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외국인 근로자 보호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펴낸 '2025년 산업별 인력 수급전망 및 외국인력 수요 연구'에 따르면 올해 고용허가제 도입쿼터 규모는 9만 5123명이다. 이 가운데 제조업이 6만 3845명으로 전체의 67%를 차지하고 있다. 조선업은 제조업 도입쿼터에 포함된다.

조선업은 우리 경제를 성장시킨 대표적인 업종으로 꼽힌다. 코로나19 시기 물동량이 줄면서 주춤했으나 최근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글로벌 해운 경기 회복과 함께 친환경 선박 수요가 늘었고, HD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한화오션 등 국내 '빅3' 조선소는 수주량이 크게 증가했다. 그러나 정작 현장에서는 늘 일손이 부족하다. 고된 노동 환경과 위험한 작업 환경 탓에 내국인 근로자들이 기피하기 때문이다. 

조선업계는 앞으로도 현장 외국인 근로자 수가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조선업계는 앞으로도 현장 외국인 근로자 수가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그 빈자리를 외국인 근로자들로 채웠다. 외국인 고용허가제라는 제도가 뒷받침되면서 외국인들이 국내에서 일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외국인 고용허가제는 국내 인력을 구하지 못한 기업이 정부로부터 고용허가서를 발급받아 합법적으로 비전문 외국인력을 고용할 수 있도록 하는 마련된 제도다. 

조선업계에 따르면 외국인 근로자 고용규모는 계속 늘고 있다. HD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한화오션 등에 확인한 결과 HD현대중공업은 직영·협력사 포함 현장 외국인 근로자 수가 약 5000명 정도다. 전체 외국인 근로자의 약 80%가 용접, 도장, 취부, 사장, 발판설치 및 해체 등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직영·협력사 포함 약 2700명의 외국인 인력을 고용 중이다. 삼성중공업에 따르면 이들 근로자들의 국적은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우즈벡, 인도, 베트남, 방글라데시 등이다. 주로 용접, 도장, 전장 등 업무를 맡는다. 한화오션은 직영·협력사 포함 약 3000명의 외국인 근로자가 근무 중이다. 이들 국적 역시 네팔, 베트남, 미얀마, 우즈벡 등 다양하다. 담당 업무는 용접, 도장 등이다. 

조선 3사의 직영·협력업체 외국인 근로자 고용 규모는 1만 명을 웃돈다. 업계는 외국인 근로자를 현장 핵심 인력으로 보고 있다. 더이상 '보조 인력'이 아니라는 의미다. 조선업 현장에 '한국인은 없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용접·도장·발판 설치 및 해제 등 외국인 근로자들이 주로 담당하는 작업은 상당한 위험이 따른다. 근골격계 질환, 화상, 낙상, 유해물질 노출 등 각종 산업재해의 위험이 상존한다. 

조선업 현장 외국인 근로자들은 주로 용접·도장·발판 설치 및 해제 등 작업을 맡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조선업 현장 외국인 근로자들은 주로 용접·도장·발판 설치 및 해제 등 작업을 맡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송명제 가톨릭관동대학교 국제성모병원 응급의학과교수는 "제조업 현장에서는 외상환자들이 많이 발생할 수 있다. 손발이 기계에 끼여 절단 또는 협착 사고 등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위험한 현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 건강권 보장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기업들은 안전한 작업장 조성을 위해 노력 중이라는 입장이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산업재해로 치료 후 복직하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체계적인 회복 지원 절차를 운영하고 있다. 복직 시 산업보건의가 부상 부위, 치료 기간, 경과 등을 종합 검토해 업무적합성 평가 및 면담을 실시한다. 회복 상태에 따라 연장근로 제한 등 근무 조정으로 건강 악화를 예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매월 약 20차수의 외국인 맞춤형 안전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9개 국적 29명 상주 사내 통역사를 두고 안전교육 통역 및 각종 안전자료와 지침서를 제공한다. 현장 통역 지원 활동도 실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외국인 근로자 대상 정기 안전교육 및 특별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언어권별 안전교육 자료와 교재를 배포하고, 외국인 근로자 안전관리 전담 조직을 운영 중"이라고 답했다.

한화오션 측은 "외국인들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사전 안전 교육 학습 선행화를 위한 국가별 안전가이드북 제공 ▲7개국 글로벌 코디네이터 운영을 통해 각종 통·번역서비스 제공 ▲주기적인 인터뷰를 통한 개선 사항 청취 ▲용접기초품질 준수 10대 항목 픽토그램 활용해 품질 향상 ▲방한용품 제공 ▲국가별로 번역된 조선소 생활백서 제공 등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외국인 근로자의 안전과 복지도 기업의 지속가능성 지표로 평가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전문가들은 외국인 근로자의 안전과 복지도 기업의 지속가능성 지표로 평가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전문가들은 기업들의 안전교육과 관리만으론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인정 교수는 "기업의 책임은 단순히 '안전교육을 했다'에서 끝나면 안 된다. 그 교육이 실제로 이해되고, 실행될 수 있게 전달됐는가가 중요하다"며 "최근 일부 기업들이 그 나라 출신의 선임 근로자를 '안전 리더'로 지정해 같은 언어로 교육하고, 매일 작업 전 안전 점검을 함께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해외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싱가포르의 경우엔 정부가 인증한 외국인 근로자 기숙사 기준을 마련해 위생, 환기, 소음, 심리상담 접근성까지 기업 책임에 포함시켰다. 기업의 ESG 경영이 결국 사람을 보호하는 경영이라면, 외국인 근로자의 안전과 복지도 기업의 지속가능성 지표로 평가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회 시스템의 역할도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인정 교수는 "독일과 네덜란드는 '이주노동자 건강지원 패키지'를 운영한다. 건강검진, 직업병 예방, 심리상담, 언어 통역 서비스를 통합 제공한다. 이 서비스의 결과로 의료비와 산재율이 모두 줄어든 효과가 있었다. 복지가 비용이 아니라 투자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며 "한국도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외국인노동자에게도 보장해야 한다. 그게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지키는 길"이라고 역설했다.

송명제 교수는 "산업현장에서의 사고는 그냥 사고가 아니라 산업재해라고 부른다.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업무와 관련된 구조적·법적 책임이 있는 '재해'이기 때문이다. 이 구조적, 법적 책임은 기업, 정부를 포함한 우리 사회 모두에게 있는 것"이라며 "안전한 근로환경 조성을 위해 우리 모두가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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