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의약품 원료 등 제외하면 합성의약품 원료 자급률 10%대
업계 "올 3월부터 시행한 약가 우대 정책 실효성 없어"
복지부 "기등재된 국산원료 사용 국가필수의약품으로 확대 검토"
![원료의약품(API)은 완제의약품의 개발 및 제조에 필수적인 주성분으로, 의약품 공급망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https://cdn.mkhealth.co.kr/news/photo/202511/76280_85727_4431.jpg)
제약산업의 '뿌리'로 불리는 원료의약품 자급률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중국과 인도 등 저가 원료 수입 의존도가 높아, 글로벌 공급망 충격 시 필수의약품 수급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우려다.
지난달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장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원료의약품 공급업체 이니스트에스티 한쌍수 대표는 국산 원료의약품 육성 대책을 촉구했다.
한 대표는 당시 국감 현장에서 "미국은 바이 아메리칸 정책으로 원료약을 자국 내에서 조달하게 유도한다. 유럽연합은 유럽 원료약 생산 확대 전략으로 공동 R&D 펀드와 생산설비 보조금을 지원한다. 일본도 국가필수의약품 원료를 지정해 정부 보조금을 지원하고 생산기반을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 대표의 국정감사 참고인 출석은 백종헌 국민의힘 의원의 요구에 따른 것이다. 백종헌 의원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건네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내 원료의약품 자급률은 2022년 11.9%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2023년에도 25.6% 수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그간 업계와 정치권 등에선 원료 수입국이 중국과 인도 등에 편중돼 있어 글로벌 공급망에 문제가 생길 경우 필수의약품 수급이 원활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원료의약품(API)은 완제의약품의 개발 및 제조에 필수적인 주성분으로, 의약품 공급망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지난달 한국제약바이오협회가 펴낸 '원료의약품 동향 및 지원 방안' 리포트에서 윤지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1990년대 중반까지 글로벌 API 공급의 약 90%를 미국, 유럽, 일본이 담당했다. 이후 비용 절감을 위한 생산시설 해외 이전 등 오프쇼어링이 본격화되면서 현재 중국이 40% 이상을 공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윤 연구원은 "중국은 인프라 투자, 보조금 지원 등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저렴한 원재료, 낮은 에너지 비용을 바탕으로 원료의약품 대량생산 기지로 부상했다"며 "지난해 기준 국내 원료의약품 수입 상위 3개국은 중국(36.3%), 인도(14.2%), 일본(9.0%) 순이다. 이들 세 국가의 수입액이 전체 수입액의 59.5%를 차지해 글로벌 공급망 교란에 취약한 구조를 보인다"고 지적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완제의약품 업체들이 단가를 맞추려면 낮은 가격으로 공급하는 중국산 원료를 쓸 수밖에 없다. 국산 원료의약품 자급률이 20% 이상이라는 건 바이오의약품도 포함한 수치로 보인다. 합성의약품만 놓고 보면 10%대를 간신히 유지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원료의약품 자급률 문제가 수면 위로 오른 건 코로나19 팬데믹에 이은 미·중 갈등 등 외부적 요인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다. 윤 연구원은 "미·중 무역 갈등과 코로나19 팬데믹 사태 등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와해되고 자국 우선주의가 심화됐다"고 진단했다.
중국 의존도가 높은 미국, 유럽, 일본 등은 원료의약품 수급 불안을 국가 보건 안보 위협 요인으로 여기고 관련 대책을 내놓고 있다. 미국은 2022년 9월, 핵심 API 제조 역량 강화를 위한 행정명령을 발표하고, 5년 내 국내 생산 경구용 의약품 API의 25%를 자체 생산한다는 비구속성 목표를 설정했다.
EU는 지난해 11월, '유럽 의약품 부족 모니터링 플랫폼'을 도입해 역내 의약품 공급·수요 데이터를 중앙집중화하고 자동화된 시스템으로 관리하고 있다. 일본은 2023년 후생노동성이 550억엔(약 5100억 원) 규모의 항생제 API 제조시설 건설 지원 정책을 발표하는 등 본격적인 국내 생산 확대에 나섰다.
한쌍수 대표는 매경헬스와 통화에서 "원료의약품 자급률 공론화는 코로나19 팬데믹이 분기점이었다. 당시 해열제 원료도 수입이 어려웠다. 국민들이 약을 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서 '제약주권'이라는 말이 나왔다.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완제의약품 자급률이 거의 100%다. 완제는 만들 수 있지만 재료가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원료의약품 자급률이 낮은 이유에 대해 "시장논리다. 인건비, GMP 설비 운용, 전기료와 폐기물 처리 비용 등이 만만치 않다. 중국이나 인도와 비교하면 원가가 높을 수밖에 없다. 국산 원료의약품과 가격을 놓고 보면 중국과 인도에서 들어온 수입산보다 국산 제품 가격이 두 배 가까이 비싼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세종청사. [사진=연합뉴스]](https://cdn.mkhealth.co.kr/news/photo/202511/76280_85728_494.png)
정부도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을 하고 있으나, 정책 실효성 제고가 아쉽다는 지적이다. 보건복지부는 보건안보 차원에서 안정적인 의약품 공급과 원료의약품 자급화를 위해 약가 우대 정책을 이어오고 있다.
복지부에 따르면 2012년부터 자사에서 원료를 직접 생산한 의약품에 대해 약가 우대를 적용하고 있다. 올 3월부터는 신규 등재되는 국가필수의약품의 경우 자사 생산 원료가 아니더라도 국산 원료 사용 시 약가를 우대하는 방향으로 확대 개선했다.
복지부가 제도 개선 의지는 있으나, 실효성이 없어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쌍수 대표는 "약가를 우대해주는 정책이 시행되고 있지만 '신규 등재 의약품'으로 제한된 상황이다. 효과적인 유인책 역할을 못하고 있다. '신규 등재'를 '기등재'로 바꿔야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대표 설명에 따르면 '국산 원료의약품 사용 약가우대 정책' 시행 7개월 동안 신청 제약사와 신청 품목은 한 건도 없었다. 제도 개선 관련 질의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올해 3월 이전에 기등재된 국산원료 사용 국가필수의약품으로도 확대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답했다.
윤 연구원은 "공급망 매핑으로 의약품 공급망의 가시성을 높이고, 수급 불안정이 높은 의약품을 사전에 식별해 필요시 비축하는 제도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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