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한의사협회 홍보이사 
한의학, 부분이 아닌 전체를 보는 의학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전 세계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화려한 K-팝 무대와 판타지적 요소가 결합된 작품인데, 뜻밖에도 한의사가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특히 주인공 루미에게 던진 한마디가 인상적이었다.

"부분을 치료하려면 전체를 이해해야 하는 법이죠"

이 짧은 대사는 사실 한의학의 핵심 철학을 잘 보여주는 말이다.

서양의학은 정밀하다. 혈압, 혈당, 콜레스테롤 같은 수치를 통해 병을 찾아내고, 수술과 약으로 즉각적으로 대응한다. 응급 상황에서 서양의학의 강점이 존재한다.

그러나 모든 질병이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 고혈압이나 당뇨 같은 만성질환은 수치를 조절해도 환자가 겪는 피로, 불면, 소화불량은 여전한 경우가 많다. 정신과적 문제도 비슷하다. 우울증 환자가 불면이나 소화장애를 호소하면 정신과와 내과가 따로따로 치료하다보니, 정작 환자의 고통은 남는다. 암 환자도 항암과 수술이 끝난 뒤 피로와 정서 문제를 겪는데, 여러 과에서 쪼개어 접근하다 보니 삶의 질 회복이 더디다.

한의학은 다른 길을 제시한다. 몸과 마음, 생활습관과 환경을 하나의 큰 그림 안에서 본다. 불면증 환자를 단순히 '잠이 안 온다'고 보지 않고, 소화 기능의 허약함이나 정신적 불안까지 함께 바라본다. 고혈압 환자도 단순히 수치만 보는 것이 아니라, 생활습관이나 다른 원인을 찾아내 질환의 원인을 함께 치료를 한다. 한의학은 이렇게 환자의 증상뿐 아니라 그 원인을 함께 다루며, 치료하고 전반적인 균형을 회복시키는 데 주안점을 둔다.

영화 속 루미가 목소리를 잃은 이유도 단순히 목의 문제가 아니었다. 마음속 깊은 상처와 두려움이 원인이었다. 한의사는 이를 '심리적 벽'이라고 표현하며, 증상의 뿌리가 마음에 있음을 짚어냈다. 결국 루미는 약을 먹고 낫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벽을 깨뜨리며 치유된다.

이 장면은 사실 한의학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몸과 마음을 나누지 않고, 전체를 바라봐야 비로소 진짜 치유가 가능하다는 메시지다.

이번 애니메이션은 전 세계 수많은 시청자들에게 한의학을 처음으로 접하는 계기가 되었다. 포도즙 처방 같은 유머러스한 장면도 있었지만, 오히려 한의학을 친근하게 알리는 효과가 있었다. 무엇보다 "부분보다 전체를 본다"는 철학이 문화 콘텐츠를 통해 자연스럽게 전달된 점이 반갑다. 외국의 콘텐츠가 한의학을 스토리에 담아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세계는 한의학의 독창적 가치를 인정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 한의학은 단순한 치료를 넘어 의료관광, 웰니스 산업, K-푸드와도 연결되며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동의보감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고, 세계보건기구(WHO) 역시 전통의학을 미래 보건 전략의 중요한 축으로 채택하고 있다. 이런 세계적 흐름 속에서 한의학은 독창적 가치를 인정받으며 점차 주목을 받고 있고, 그 국제적 입지는 더욱 강력해지고 있다.

K-팝이 전 세계를 흔들어 놓았듯, 이제는 한의학이 문화와 의학을 잇는 또 하나의 한류로 자리 잡을 차례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그 가능성을 보여준 첫 신호탄이다. 

한의학의 지혜가 스크린 위에서 빛을 발하는 순간, 우리는 새로운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세계인의 마음속에, 의학을 넘어 문화로 자리매김할 한의학은 어떤 모습일까'. 

이제 중요한 것은 세계가 주목하는 이 흐름을 우리 스스로 지켜내고 더욱 키워갈 수 있는 사회적 관심과 제도적 뒷받침이다.

김석희 한의사

대한한의사협회 홍보이사 
우석대학교 동신대학교 한의과대학 겸임교수
바른몸에스한의원 원장

*본 칼럼 내용은 칼럼니스트 개인 의견으로 매경헬스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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