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환자 600만명 일본, 최대 고민 중 하나는 치매환자 자산관리
일본, 75세 이상 약 30%가 치매 앓고 1000조원규모 금융자산 보유
금융자산 고령화에 일본 정부 비상…주식·부동산시장에도 악영향
성년후견제도·가족신탁 등 활성화해 치매환자 자산 엄격하게 관리
한국도 치매환자 100만명 웃돌아…금융자산 활용방안 공개 논의를

어느 날 갑자기 치매 증세가 악화되어 기억력이 상실되어 버린다면?
자아상실과 함께 치매환자 본인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재산도 '기능'을 멈출 가능성이 높다. 인지능력과 분별력이 없는 치매환자는 자산을 활용할 수 있는 의사표시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같은 현상이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치매 환자는 2022년 100만명을 넘었고, 65세 이상 치매환자는 약 94만명이다. 65세 이상 인구 10명중 1명꼴로 치매를 앓고 있다.

우리보다 앞서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일본은 치매 환자가 약 600만명으로, 65세 이상 3750만명의 약 16%가 치매를 앓고 있다. 전후 단카이 세대(베이비붐 세대)가 모두 75세를 넘는 2025년 700만명을 웃돌 것으로 일본 정부(후생노동성)는 예측하고 있다. 후생성은 2050년 65세 이상 3명중 1명꼴에 해당하는 약 1200만명 이상이 치매 또는 경도인지장애(MCI)를 앓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치매는 사실 우리나라나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세계 치매환자는 5500만명이며 그에 따른 경제손실은 1조 3000억달러(2019년 기준, 약 200조원)에 달한다고 세계보건기구(WHO)가 추산했다. 치매 원인은 알츠하이머병이 가장 많고 뇌혈관성이나 레비소체형 등 종류가 다양하다.
치매는 기억력이나 판단력과 같은 인지기능이 떨어져 사회생활에 지장을 주게 된다. 사회활동의 가장 기본인 '돈(자산)'이용과 함께 돈 가치판단력이 떨어져 경제행위를 하기 힘들게 된다. 무엇보다 고령자의 금융자산이 은행이나 집안 금고에 묶여 있게 되면, 소비감소로만 그치지 않고 경제성장을 위한 투자재원 확보 어려움, 주식과 부동산시장 위축 등으로 이어져 GDP가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일본의 경우 치매 발병률이 급격하게 높아지는 75세 이상 후기고령자가 소유한 금융자산은 2015년 전체 금융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2%이지만 2040년 30%를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고령자가 보유한 금융자산과 리스크성 자산이 늘어나면서 인구고령화 이상으로 '금융자산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후생성에 따르면 75세 이상은 약 30%가 치매를 앓고 있고, 조만간 그 비율이 35~40%로 상승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일본 금융청에 따르면, 현재도 가계가 보유한 전체 금융자산의 6% 정도를 치매 환자가 보유하고 있다. 오는 2035년에는 약 10~12%로 높아질 전망이다. 일본은행 자금순환 통계에 따르면 가계의 금융자산 잔액은 약 1900조엔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 75세 이상 치매 환자가 보유한 금융자산은 100조엔규모이다.

일본 제일생명경제연구소(第一生命經濟硏究所)는 일본 전체 치매환자가 보유한 금융 자산은 143조엔(약 1400조원)에서 2030년 231조엔(약 2300조원)으로 급증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일본 가계 금융자산의 65% 이상을 60세 이상 인구가 보유하고 있어 앞으로 치매환자의 금융자산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치매환자의 주식보유도 만만치 않다. 일본 미즈호종합연구소는 치매 고령환자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 등 유가증권이 2035년 전체의 15%를 차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리나라는 치매환자 하면 '자동차 운전사고'가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일본은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사회보험 노무사 모치즈키 아쓰코 씨의 말을 인용해 "치매환자의 자산 정보는 가족과 공유해 두는 게 좋다. 특히 최근에는 인터넷 뱅킹을 사용하는 고령자도 많아 통장 자체가 발행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치매악화로 기억력이 나빠지면 디지털화된 재산을 찾는 것은 집안에서도 매우 어렵다. 은행명이나 계좌번호, 로그인할 때의 비밀번호 등을 아날로그 수단으로 메모해 두고, 신용할 수 있는 가족에게만 전달해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도했다.

일본은 치매로 진단되면 원칙적으로 본인이 금융기관에서 예적금을 인출할 수 없게 된다. 예적금 뿐만 아니라 증권계좌에서 보유하는 주식투자신탁이나 부동산 매매도 할 수 없다. 본인의 자산이 사실상 동결되기 때문에 가족이 간병비용이나 생활비를 대신 내줘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 같은 정책은 판단 능력이 떨어진 치매환자의 자산을 동결해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모치즈키 아쓰코 씨는 "친족이라고 해서 환자 본인의 자산을 적절하게 관리한다고 할 수 없어요. 가족이 치매환자의 예금을 사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일본 전국은행협회는 의료비나 간병비 등 환자 본인의 이용이 분명한 사용처에 대해 친족이 대신 인출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했다.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이처럼 치매환자의 금융자산이 급증하고 자산의 입출금 논란이 계속 되자, 일본은 '성년후견제도'나 '가족신탁'을 활성화하고 있다.
성년후견제도는 가족을 비롯해 월 2~3만엔을 주고 변호사, 법무사 등 전문직 종사자를 후견인으로 지정해 자금을 관리하고 입출금을 맡기는 것이다. 하지만 후견제도는 수입이 없고 자산이 적은 고령자에게 부담이 커서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가족 또는 전문가 이외의 무보수로 일반 시민이 후견인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가정법원에 보고해야 하는 업무가 만만찮아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 가족신탁은 치매가 되기 이전에 본인과 가족이 협의해 자산활용에 대해 신탁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환자 본인이나 가족이 치매로 악화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어서 반발이 적지 않고 이용률도 낮다.

최근 들어 고령자의 은행계좌를 자산용과 생활자금용으로 나눠 자산용 계좌의 해지와 입출금은 금융기관과 가정법원 등이 엄격하게 관리하도록 하고 있다. 생활자금용 계좌는 후견인이 인출금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인터넷금융도 허용하고 있다. 이는 은행에 가족을 '대리인'으로 지정, 신고하게 되면 절차를 거쳐 대리인에게 전용 현금카드가 발급되어 본인이 건강할 때나 치매에 걸린 후에도 입출금을 할 수 있다. 주식 등 유가증권도 후견인이 운영하지 못하도록 엄격히 금지했지만 최근 개선되고 있다. 일본 금융계는 고령자의 보유주식 총액이 저축예금보다 많다고 추정하고 있다. 일부 증권사는 대리인이 거래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일본 치매환자의 금융자산 동결은 고령화속도가 일본보다 빠른 우리나라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국내 치매환자는 현재 105만명을 웃돌고 있고 2030년 142만명, 2050년 315만명으로 급증이 예상되지만 정부나 금융권에서 이들이 보유한 금융자산 실태조사 및 활용방안에 대한 공개적인 논의는 아직 요원하다.
이병문 의료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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