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집 작아서 기초대사율 낮고 지방 많은 게 생존에 유리
여성 XX염색체 유전자 결함때 복제본처럼 빨리 대체 가능
에스트로겐 호르몬도 면역체계 활성화…질환예방에 도움
금연·절주·운동·적정한 체중 유지 등 수명 연장에 한몫
남자는 화나도 참으라는 통념이 우울증 불러 죽음 앞당겨

이병문 의료전문기자
이병문 의료전문기자

우리나라는 지난달말 현재 100세를 넘는 호모 헌드레드(Homo Hundred)가 8688명(행정안전부 연령별 인구현황)이다. 남녀 성별로 보면 남성은 1568명, 여성은 7120명이다. 여성이 남성보다 4.5배 이상 더 많다. 일본은 올해 3월말 현재 100세인이 9만 1000명으로 남성 1만 1000명, 여성 8만명(총무성 통계국)에 달한다. 일본도 여성이 7배 이상 많다. 우리나라 100세인 인구는 정부 조사기관 마다 달라 인구 현황의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 통계를 기준으로 했다.
우리나라의 전체 인구는 5126만여명, 일본은 1억 2400만여명이란 점을 감안하면 일본의 100세인 비율이 우리보다 훨씬 많다. 그 이유는 일제 식민지배에 이어 근대화를 거치면서 경제적 궁핍에 의한 영양섭취 부족 및 어린 시절 높은 영유아 사망, 그리고 각종 사고 사망 등이 작용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국제연합(UN)은 전세계 100세인 인구는 2020년 2월 기준 약 57만 3000명이라고 추산했다.

성별 비율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연령을 60~90대로 낮춰보면, 우리나라는 60~69세가 남성 381만 3150명, 여성 393만 258명으로 남녀 성별 차이가 거의 없다. 70~79세는 남녀 각각 187만 9540명, 220만 5218명이고 80~89세는 76만 8986명, 131만 8125명, 90~99세는 7만 3513명, 24만 3708명이다. 나이가 많을수록 남성보다 여성의 비율이 점점 더 많아진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65세 이상은 인구 3623만 3000명 중 남성 1571만 5000명, 여성 2051만 8000명이고, 75세 이상(2038만 9000명)은 남성 812만 8000명, 여성 1226만 1000명이다. 85세 이상은 남성 217만 9000명, 여성 456만 8000명이다. 하지만 90~99세는 남성이 72만 1000명인데 반해 여성은 196만 9000명으로 격차가 더 크게 벌어진다.

한국과 일본의 통계에서도 확인됐지만, 일반적으로 여성은 남성보다 오래 산다. 햇수로 따지면 대략 10년 정도 더 산다고 알려져 있다. 생후 122년 164일 동안 생존해 인간의 최장수 기록을 세운 프랑스 장 칼망(Jeanne Calment, 1875.2.21~1997.8.4)도 여성이다.
우리나라의 남녀 기대수명 차이는 약 6년이다. 통계청이 발표하는 '2022년 생명표'를 보면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2.7년(남자 79.9년, 여자 85.6년)이고, 이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기대수명 80.6년보다 약 2년 길다. 한국인의 건강수명은 65.8년(남자 65.1년, 여자 66.6년)이다. 유병 기간은 16.9년(남자 14.8년, 여자는 19년)이다. 즉, 한국인은 약 65년 동안 건강하게 지내고 약 17년 동안 병치례를 하면서 골골하게 산다는 얘기다.
세계에서 남녀 기대수명 격차가 가장 큰 나라는 러시아로, 11.6년에 달한다. 이는 남성들이 보드카(술)를 좋아하고 과음에 따른 각종 사고와 질병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일본 도쿄 주변 마쓰도의 한 경증 치매 환자들이 입소해 있는 한 요양병원. 환자들이 남성보다 여성들이 눈에 많이 띈다.​
일본 도쿄 주변 마쓰도의 한 경증 치매 환자들이 입소해 있는 한 요양병원. 환자들이 남성보다 여성들이 눈에 많이 띈다.​

여성은 왜 남성보다 오래 살까? 여성의 식·생활습관이 더 건강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유전적인 탓일까?
여성이 오래 사는 이유와 관련해 과학 저널리스트 마르타 자라스카('건강하게 나이 든다는 것'저자·어크로스 출간)는 △생존에 적합한 체형과 강인함 △ 남자(XY)와 달리 유전적 결함을 대체할 수 있는 경쟁력있는 염색체(XX) △면역체계에 도움이 되는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 등을 꼽았다.
자라스카는 규칙적인 운동, 절제된 식습관과 생활습관 등은 건강수명을 늘려줄 수 있지만 절대적이지는 않다고 '극단적인 인류의 한 재난상황'을 예로 들며 주장했다.

1846년 11월 미국 시에라네바다산맥의 외딴 호수 주변에서 폭설로 3개월 동안 갇혔던 남녀 81명(도너 일행·오늘날 이들 무리를 이끌던 조지 도너의 이름을 땄다)의 생존과정을 통해 여성이 재난상황을 어떻게 극복하고 남성보다 오래 살아남는가를 보여줬다. 세상과 단절된 채, 식량이 점점 줄어들자 야외에서 생존 기술이 거의 없는 도너 일행은 '먹을 것에 대한 광적인 욕구'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이들은 반려견을 잡아 먹었고 짐승 가죽을 삼킬 수 있는 젤리로 만들었다. 그러다 2월에는 죽은 일행의 시체를 먹었다. 마침내 구조대가 도착했을 때 81명중 35명이 굶주림과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상태였다. 이상하게도 사망자 대부분은 남성이었다. 과학자들은 도너 일행의 남성 사망위험도가 여성의 두배 이상이라고 추산했다.

여성이 남성보다 굶주림에서 더 잘 살아남는다는 사실은 1933년 우크라이나와 1845~49년 아일랜드를 포함한 유럽의 많은 기근에서도 확인됐다. 이는 여성이 남성보다 몸집이 작고 기초대사율이 낮으며 피하지방 비율이 높기 때문이라고 과학자들은 설명했다. 즉, 여성은 적게 먹고도 생존할 수 있고, 역설적이지만 복부지방이 몸을 따뜻하게 유지해준다는 얘기다.

여성의 염색체도 남성보다 오래 사는 수수께끼중 하나이다. 여성 염색체는 X염색체를 두개나 가지고 있어 필요한 경우에 결함이 있는 유전자를 대체할 수 있다. 여성 염색체(XX)는 몸안에 모든 유전자의 복제본이나 다름없는 여분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여자 염색체인 XX쌍은 각각의 부분을 교환해서 교정할 수 있는 반면, 남자 Y염색체는 작은 부분 외에는 모두가 보호막에 싸여 있어 X염색체와는 어떤 방식의 교환도 허용하지 않는다. Y염색체는 남자들의 성향과 비슷하게 자기 스스로 보수관리와 교정을 해나간다.

여기에 여성은 남성보다 키가 작아서 애초에 잘못될 세포가 적다. 여성 호르몬도 장수에 한몫한다.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면역체계를 억제하는 경향이 있어 남성은 바이러스와 세균에 더 민감하다. 남자는 여자들보다 인간이 경험하는 가장 보편적인 감염 중 70% 이상 걸릴 확률이 더 높다. 에스트로겐과 같은 여성호르몬은 면역체계에 힘을 보태주고 동맥의 나쁜 콜레스테롤(LDL)을 청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

19세기 궁궐에 살았던 내시(內侍, 또는 내관·內官) 수명을 분석한 결과, 이들은 왕을 비롯해 궁궐에 사는 다른 남성들보다 평균 20년을 더 살았다고 알려져 있다. 여성들이 폐경 전후로 심장박동수가 높아지고 말년에 심뇌혈관 질환에 걸리기 쉬운 이유도 호르몬 작용 때문이라는 게 정설이다.

시각을 여성에서 남성 중심으로 바꿔보자. 남성들은 왜 여성들보다 일찍 사망할 까?
남성은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사회적으로 성공하기 위한 스트레스, 그에 따른 각종 질환 노출이 생명을 재촉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나이가 들수록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장수하려면 근력운동이 매우 중요하다. 최근 들어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노년 부부들이 함께 운동을 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출처= 게티이미지스
나이가 들수록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장수하려면 근력운동이 매우 중요하다. 최근 들어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노년 부부들이 함께 운동을 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출처= 게티이미지스

미국내 최고 명의로 손꼽히는 마리안 J.레가토 콜럼비아대 의대 교수('왜 남자가 여자보다 일찍 죽는가?'저자)는 "40~50대 남성이 죽는 가장 큰 이유는 혈관이 막히는 관상동맥 질환과 암 때문"이라며 "이는 남성의 가족 부양 책임과 사회적 성공, 스트레스가 또래 여성들보다 관상동맥질환, 고혈압, 당뇨병을 비롯한 온갖 질환에 노출시켜 '성공'과 '생명'을 맞바꾼 것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영국의 한 연구결과 사회 각 분야에서 높은 지위에 오른 남성들은 가장 낮은 지위를 가진 남성들에 비해 심장병 발생률이 4배나 높았다. 관상동맥질환 발생률은 이민자와 같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에게서 매우 높게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남자들은 성장하면서 온갖 명령과 통제에 시달리면서 살아간다. "함부로 불평하지 마라. 고통과 상처를 힘껏 떨쳐버려라. 사회와 가정의 안정을 위해 어떤 위험한 도전에도 용감히 맞서라"
이처럼 세상은 남자들이 기꺼히 위험을 감수하며 용감하게 임무를 완수하라고 요구하지만 그들이 겪어야할 고통에 대해서는 절대 말하지 말라고 강요한다. 여자들은 다른 사람들과 슬픔에 대해 마음을 쉽게 터놓고 말하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을 수다를 떨며 얘기한다. 하지만 남자들은 금기사항에 가까울 정도로 속마음을 얘기하지 않는다. 설령 누군가를 만나 마음속 비밀을 털어놓더라도 기껏 들을 수있는 충고는 '참으라'는 말뿐이다.

이같은 '남자다움의 응어리'는 우울증으로 이어진다. 우울증은 많은 질병을 일으키는 암적인 존재다. 심장병, 고혈압, 뇌졸중, 각종 감염 등 질환을 앓고 있는 남자 대부분은 상당한 우울증세를 보인다. 우울증은 남자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각종 합병증으로 나타난다.
따지고 보면 암과 심장병도 스트레스성 우울증이 원인이다. 암은 45~54세 남자들에게 두번째로 높은 사망원인이며 모든 죽음의 23%를 차지한다. 암은 55~74세 남자들의 전체 사망률중 33.4%를 차지한다.

우울증은 자살로도 이어진다. 자살시도는 여자들이 더 많이 하지만 실제 자살로 이어지는 겨우는 남자가 여자에 비해 4배나 더 높아 성인 남자의 사망원인중 3번째를 차지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2006년 실시한 역학조사에 따르면, 우울증에 걸린 환자가 자살을 시도할 확률은 10~1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울증은 실직을 했거나 퇴직을 했을 경우에도 쉽게 찾아온다. 대부분 남자들은 어릴 때부터 남자의 가치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얼마나 성공적인가에 달려있다고 배웠다. 이 때문에 일단 직업의 세계에서 낙오되었다면 그 만큼 실패한 인생이라는 생각이 그를 압도하게 되고 이것이 급속히 우울증의 '노예'가 되게 만든다. 퇴직 후 찾아오는 박탈감과 상실감이 인체에 가해지는 충격이 매우 크다는 얘기다. 이같은 절망감에서 벗어나려면 자원봉사나 취미생활을 통해 사회와의 연결고리를 적극 이어나갈 수 있도록 자기만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혼자있는 시간을 가급적 줄이고 평생 해온 직업과 연관이 있는 일자리를 찾아보는 것도 바람직하다.

남녀의 수명은 선천적 또는 후천적 요인에 의한 영향이 크지만, 전문가들은 개개인의 노력에 의해 얼마든지 장수를 누릴 수 있다고 강조한다.
김성권 서울대의대 명예교수(서울K내과 원장, 신장내과 전문의)는 "선천적으로 남성 수명이 뚜렷하게 짧다면 왜 선진국들은 남녀 수명차이가 작고 저개발국들은 큰 지 설명해주지 못한다. 유전이 수명에 미치는 영향이 7%에 불과하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된 적이 있다. 금연, 절주, 적정 체중유지, 운동, 건강한 식단 등의 후천적 요인의 개선을 통해 수명을 늘릴 수 있다"고 강조한다.

약을 하루 평균 3~5개 복용하는 70~80대 남성이 많이 죽는 이유는 젊은 시절 잘못된 식·생활습관에 의한 '질병의 싹'이 표면화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김종인 원광대 명예교수(장수과학연구소장)는 "40~50대 과음 및 흡연, 운동하지 않는 잘못된 습관으로 인해 65~75세에 암을 비롯한 각종 질환이 급격히 발생해 일부는 사망하고, 일부는 병을 나아서 80~90세 넘게 산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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