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배가 아프면 배 아픈 약, 혈압이 높으면 혈압 떨어뜨리는 약을 먹는다. 신약 개발도 마찬가지다. 어떤 현상이 있으면 이에 맞춰 계획을 세운다. 노화로 인지기능이 나빠지는 현상에 대해 치매약을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감염병과 일부 암, 유전성 질환과 달리 노화의 결과로 벌어지는 기능 이상에서는 이런 접근이 잘 작동하지 않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노화에 의해 근육의 기능과 양이 감소하는 근감소증과 이의 근본 원인이 되는 노쇠다.

근육의 기능과 양은 근육을 얼마나 사용하는지, 얼마나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는지, 끝으로 의학적, 생물학적으로 근육 단백을 만들고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이 충분히 갖춰져 있는지 등 세 가지 요인에 좌우된다.

지금까지 많은 연구들이 별다른 질병이 없으면서 근감소 현상 자체만 존재하는 사람들을 모아 운동을 격려하고 영양을 공급하여 근육의 기능과 양이 증가되는 것을 관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를 토대로 "근감소증의 치료는 운동과 영양밖에 없다"라고 결론 내리곤 하는데, 이는 노화와 기능의 변화에 대한 무지에서 시작한 '오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운동과 영양은 중요하다. 이 두 요소가 근감소증의 가장 효과적인 치료 수단이란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신체 활동이나 식사 중 단 한 가지만이라도 왜곡되거나, 심지어 운동을 꾸준히 하더라도 운동습관 내에서의 균형이 틀어지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에 광범위한 문제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저 근육량, 근력, 신체 기능이라는 세 가지 기준만으로 다양한 임상적인 문제들에 대해 단순히 근감소증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도, 그에 대한 해답은 그저 운동과 영양이라고 뭉뚱그리는 것도 위험하다. 마치 폐암으로 기침하는 사람에게 단순히 기침약만 처방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수 있다.

실제로 진료실에서 기력저하를 호소하는 어르신들은 겉보기에는 근감소증을 겪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부분 여러 원인이 복잡하게 얽혀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코로나19를 앓은 이후 우울감이 심해지고 식욕이 저하해 식사량을 줄이고, 외부 활동이 줄어 우울, 불안, 수면, 인지를 모두 악화시키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런 어르신에게 “운동을 더 하세요”, “단백질을 드세요”라고 한들 소용이 있을까. 몸과 마음이 주고받는 악순환이 쉽사리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우울, 수면을 비롯해 몸과 마음을 아우르는 치료의 노력이 동반되면 식사와 활동이 저절로 좋아지면서 삶의 질이 회복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근감소증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진료실을 찾으신 어르신에서 암, 내분비계 질환, 자가면역 질환, 치매를 발견하는 경우도 많다. 먹고 있는 약들이 의식을 처지게 하거나 식욕을 떨어뜨리는 숨겨진 원인이었음을 확인하기도 한다.

당뇨병이 있어서 근육을 만드는 몸의 능력도 애초에 떨어져 있는데, 우울감으로 식사를 제대로 못 하는 것이 겹치고, 여기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느라 밖으로 나가지도 못했고, 식욕을 떨어뜨리는 약까지 먹어야 하는 모든 상황이 더해진 결과가 근감소증일 수도 있다.

이렇듯 여러 요인이 더해져 한 가지 현상을 만드는 노인의학적 문제들을 가리켜 '노인증후군'이라고 한다. 노인증후군의 치료를 위해서는 삶을 지탱하는 모든 의학적, 기능적 요인들을 자세히 뜯어보고 문제들이 만들고 있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런 통합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전문 분야가 노인의학이다.

정확한 노인증후군의 진단과 치료를 위해서는 '노인포괄평가'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나라의 의료 체계는 의사가 이렇게 자세히 환자를 살펴보고 원인을 추론해볼 기회를 주지 않는다. 2~3분의 짧은 시간 내에 자신이 표방하는 진료 과목이나 질병에 해당하는 처방을 내리고 진료를 종료해야 한다. 노인증후군의 원인을 찾기보다는 변죽만 울리게 되는 경우가 많고, 이런 문제들은 때로는 약의 부작용을 다른 약으로 끊임없이 해결하는 '처방연쇄'로 이어지기도 한다,

불편한 증상들에 사용하던 근감소증이라는 현상은 복합적인 원인이 더해져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포괄적 접근이 필요한 대표적인 노인증후군인 근감소증조차 그저 운동과 영양을 안내하면 되는 단순 질병으로 치부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근감소증은 방치하면 숨겨진 큰 질병을 놓치거나, 돌이킬 수 없는 기능 쇠퇴로 이어져 가족이나 요양보호사에 의존해 여생을 보내야 하는 전조 현상일 수 있다. 의사의 노인의학적 사고방식을 토대로 계획적인 치료가 이뤄져야 한다. 미래의 어르신 돌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이해를 바탕으로 포괄적인 노인의학 진료를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할 것이다.

*본 칼럼 내용은 칼럼니스트 개인 의견으로 매경헬스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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