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현장의 간호사는 환자 옆에 있지만 의사의 처방 없이는 환자 요구에 충분한 대처가 불가능하다. 의사와 연락이 안 되거나 처방이 늦어질 때면 환자, 보호자의 컴플레인을 간호사가 온전히 감수해야 한다. 폭언과 폭력 등 공포 분위기에 몰리는 상황이 빈번하지만 누구도 간호사를 보호해주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간호사는 업무의 경계가 모호하고 노동 강도는 선진국과 비교해 터무니없이 높다. 간호사의 높은 사직율은 간호사 수에 비해 업무량이 많다는 점, 환자의 요구에 스스로 미치지 못한다는 자괴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간호사의 사직 특히, 경력 간호사의 사직은 사회적으로도 큰 손실을 야기한다. 숙련된 간호사가 사직하면 해당 업무를 신규가 대체하게 되며 이는 환자 안전에 큰 영향을 미친다. 맞춤 치료가 일반화되고 첨단장비 등 의료의 복잡성은 증가하고 있지만, 간호인력 부족에 따라 안전성은 정지된 상황이다.
수술실의 경우 최첨단의 의료장비를 적용하는 만큼 집중적인 감시와 전문성이 요구된다. 스트레스와 긴장도가 높고 직무 숙련에 걸리는 시간이 길어 적응하기 까다롭다. 역할 갈등으로 인해 번 아웃(소진) 경험이 빈번하게 발생하지만 정작 수술실은 최소인력만이 배치돼 제대로 된 교육이 이뤄지기 어려운 실정이다.
간호법은 초고령 사회와 주기적인 감염병 위기가 반복되는 오늘날 국민의 건강과 환자안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법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직종의 이의 제기로 인해 통과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까움이 크다.
간호법 어디에도 간호사가 독자적 진료 행위를 하거나 임의로 진료업무를 한다는 내용이 없다. 간호의 전문화와 환자 안전을 위해 환 당 간호사 적정배치와 적정업무 범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마련한 법일 뿐이다. 이를 통해 간호사는 보람과 자부심을 갖고 숙련된 간호사로 현장에 더 오래 남을 수 있을 것이다.
간호사는 의료인이며 간호는 전문화된 실무영역이다. 의료법은 의사가 중심인 법이고 간호에 대한 내용은 진료의 보조 외에는 특별한 규정이 없다. 간호사의 영역에 대해 전문성을 확보하고 책임을 강조하기 위해서라도 독립법은 꼭 필요하다.
급변하는 보건 환경 속에 다양화, 세분화, 전문화되는 간호사의 역할을 현실성 있게 반영해야 한다. 간호사들이 국민의 건강과 환자 안전을 지킬 수 있도록 법이란 울타리를 마련해야 할 때다.
[손윤순 고려대안산병원 수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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