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바이오, 카이노스메드, 바이오인프라….
세 회사는 바이오 회사라는 공통점이 있다. 또 다른 유사점은 최근 기술특례상장을 추진하다 기술성 평가에서 탈락했다는 사실이다.
기술특례상장이란 기술력 있고 향후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이지만 재무제표상 적자인 회사에 상장 기회를 주는 제도. 산업 특성상 투자 기간이 길고 따라서 오래도록 재무상 적자가 지속될 수밖에 없는 바이오 업체에 매우 매력적인 제도다. 그런데 최근 이들 업종 기업의 기술특례상장 탈락 사례가 계속되면서 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시각이 비등하다.
▶바이오 업체 기술특례 잇따라 고배
▷삼성바이오로직스 사태 후 몸 사리나
기술특례상장제도는 무엇보다 상장심사가 상당히 빠르고 적자 기업도 도전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일반상장 요건은 수년간 지속적으로 흑자를 유지하는 등 준비 과정이 까다롭지만 이 제도를 통할 경우 빠르면 7개월 안에 증시 입성이 가능하다. 과정도 비교적 단순하다. 기술평가 준비(1개월), 기술평가(1개월), 예비심사 청구 준비(1개월), 예비심사(2개월), 공모 절차(2개월)를 최종 통과하면 바로 상장이다.
핵심 쟁점은 ‘보유 기술로 과연 성장이 가능하느냐’에 있다. 이를 따지기 위해 한국거래소 측은 공정하고 객관적인 기술평가 과정을 만들었다고 소개한다. 기술특례상장을 원하는 기업은 상장 신청 전에 한국거래소가 인증한 12개 전문 평가기관 중 2곳을 임의로 지정받는다. 이들 평가기관이 일정 등급 이상의 평가 결과를 내줘야 기술평가 과정을 통과할 수 있다. 통상 1개 기관에서 A, 또 다른 기관에서 BBB 이상을 받아야 한다.
문제는 아직 상용화되지 않은 최신 기술에 대해 평가가 가능하느냐다. 이런 기술 특성상 평가기관 사이에 평가 등급 차이가 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상장특례에 도전하는 일부 기업은 기대했던 등급을 받지 못해 항의하거나 재심을 의뢰하는 곳도 적잖다.
브릿지바이오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신약 후보 물질을 사들여 임상시험 후 다시 되파는 사업 모델이 주력이다. 지난 4월 기술 사업성 평가를 신청해 복수의 평가기관으로부터 실사를 진행했다. 한 곳에서는 A등급을 받았지만 다른 기관에서 BBB 등급 이상을 받지 못했다.
업계에서는 평가 방법이 아무리 다르다 해도 등급 차이가 이처럼 많이 난다면 평가기관 공신력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브릿지바이오 측은 재도전을 통해 기술력과 성장성을 입증받겠다는 입장이다. 브릿지바이오에 앞서 기술평가에서 고배를 마신 카이노스메드, 바이오인프라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이와 관련 바이오 기업 홀대론이 흘러나오고 있기도 하다. “증시에서 바이오 종목이 너무 고평가돼 있다는 시각 외에도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사건과 연계해 정부가 바이오 산업 자체의 성장성을 의심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음모론마저 제기되는 분위기다.
▶한국거래소 “바이오 홀대 없다”
▷평가기관별 평가 등급 다를 수는 있어
한국거래소 측은 어불성설이란 입장이다.
지난 5년간(2013~2017년) 66개 기업이 기술특례로 상장했다. 연평균 12개 내외 기업이 이를 통해 상장하는 셈이다. 올해도 5월 기준 5개가 이미 상장을 완료한 만큼 특별히 특례상장을 보다 까다롭게 했다거나 정권 입맛에 따라 움직인다고 볼 수 없다는 주장이다. 더불어 5월 중순 기준 20여개 업체가 특례상장 절차를 진행 중이라는 점에서 열기는 뜨겁다.
평가기관 사이 등급 차이가 심하다는 외부 지적에 대해서는 일부 인정하는 분위기다.
이호성 코스닥시장본부 기술기업상장부장은 “아직 상용화되지 않은 최신 기술에 대한 평가의 특성상 평가기관 간 일부 등급 차이가 나는 사례가 있다. 평가기관별로 평가의 공정성과 전문성을 강화하고 있으므로 앞으로 이런 부분은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오 홀대론’도 사실무근이라 강조한다.
강병모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 상장제도팀장은 바이오 코리아 ‘2018 인베스트 페어’ 행사에 참석해 오히려 “코스닥 시장의 문이 활짝 열려 있다”고 설명했다. 바이오 기업이 기술특례상장을 하기 위해서는 기술수출(라이선스 아웃) 실적, 신약 개발 파이프라인이 있으면 유리하다는 구체적인 대안도 제시했다.
강 팀장은 “지금은 코스닥에 최대한 많은 기업을 상장시키려 하는 ‘활성화’ 시기이기 때문에 상장 요건이 많이 완화된 상황”이라며 “오히려 상장을 준비 중인 기업은 중요 심사 항목을 잘 챙겨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테슬라 요건 완화도 흥행 참패
▷시행 1년 넘었지만 ‘카페24’ 한 곳만 상장
지난해 1월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한 자본시장 활성화 정책 중 하나가 테슬라 요건 상장이다. 미국 전기자동차 회사 테슬라가 미국 증시에 입성한 것처럼 ‘이익 미실현 기업 상장’을 의미한다. 시가총액이 500억원 이상인 기업 중 직전 연도 매출이 30억원 이상에 최근 2년간 평균 매출 증가율 20% 이상이거나 공모 후 자기자본 대비 시총이 200% 이상인 기업이 대상이다.
기술특례상장과는 어떤 점이 다를까. 외부 기술평가 등급을 받지 않아도 코스닥 시장 입성 기회를 준다.
이런 혜택을 십분 활용한 곳이 카페24다. 카페24는 2015년까지 적자기는 했지만 지난 3년간 연평균 20% 성장률을 자랑한 업체다. 지난 2월 8일 공모가 5만7000원에 상장한 카페24 주가는 5월 중순 기준 14만원을 넘기며 약 160% 가까이 올랐다. 시가총액도 가뿐하게 1조원을 넘겼다.
이재석 카페24 대표는 “기업이 성장과 상장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다 둘 다 놓칠 수 있는데 이 제도를 적극 활용한 덕분에 시장에서도 제대로 된 기업가치를 인정받게 됐다. 향후 일본, 동남아, 영어권 국가 진출을 위한 투자 재원을 단시일 내에 확보했다는 측면에서도 만족한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빠른 시일 내에 2호와 3호가 나올 것으로 예상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이호성 부장은 “준비 중인 기업은 많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지만 공식적인 상장 절차를 진행 중인 기업은 아직 없다”고 밝혔다.
금융투자협회는 이 제도가 활성화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풋백옵션(환매청구권)’이라 보고 최근 이마저 완화했지만 시장 반응은 그리 뜨겁지 않다. 풋백옵션이란 테슬라 요건으로 상장한 기업의 주관사(증권사)가 일반청약에 참여해, 공모주를 받은 투자자가 상장 후 3개월 내 공모가 대비 90% 이하로 떨어지면 공모가의 90%로 해당 주식을 되사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공모주 투자자를 위한 일종의 손실보전 장치다. 금융투자협회는 5월 이후부터 최근 3년 안에 테슬라 상장을 주관한 경험이 있으면서 상장 후 3개월 동안 발행사 종가가 공모가 대비 90% 미만으로 하락한 적이 없는 주관사는 풋백옵션을 면제해준다.
이혜진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원은 “주관사 입장에서는 상장 후 공모가 아래로 주가가 떨어지면 받을 비난 등 부담이 워낙 크다 보니 꺼릴 수 있다”며 “해당 요건에 부합하는 회사 입장에서도 상장했을 때 수시 공시, 사외이사 선임 등 기업공개 시 운영 유지에 드는 부담 때문이 아닌지 당국이 면밀히 살펴 제도를 보완해야 할 때”라고 분석했다.
[박수호 기자 suhoz@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59호 (2018.05.23~05.29일자) 기사입니다]

r_start r_end

r_start r_end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경헬스에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억울한 혹은 따뜻한 사연을 24시간 기다립니다.
이메일 jebo@mkhealth.co.kr 대표전화 02-2000-5802 홈페이지 기사제보

저작권자 © 매경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