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호 동아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10월 14일은 '영양의 날'이다. 지난 2007년 올바른 식생활이 건강한 삶을 지탱하는 기본이라는 의미를 담아, 친숙한 단어 '식사(食事)'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는 이날이 기념일로 지정됐다. 영양의 날은 국민의 건강한 식습관을 확산하고 올바른 영양섭취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한 취지로 제정돼 우리가 놓치고 있는 일상 속 식습관을 되돌아보고 바로잡는 계기가 된다.

유니세프(UNICEF)는 지난달 10일 보고서를 통해 전 세계 아동·청소년 비만율이 사상 처음 저체중율을 추월했다고 발표했다. 2000년 3%였던 비만율은 2022년 9.4%로 세 배 이상 증가한 반면, 저체중율은 같은 기간 13%에서 9.2%로 줄었다. 한국 역시 과체중율이 19.7%에서 34%로, 비만율이 5.8%에서 14%로 빠르게 늘었다. 전문가들은 설탕, 정제 전분, 각종 첨가물이 다량 포함된 초가공식품과 패스트푸드의 확산을 주요 원인으로 지목한다. 이러한 음식은 열량은 높지만 필수 영양소가 부족해 영양 불균형을 초래하고, 결국 비만·당뇨·심혈관질환 등 만성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영양 불균형 문제는 한국 사회 전반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질병관리청의 '2023 국민건강통계'에 따르면, 만 6세 이상 인구 중 과일·채소를 하루 권장량(500g) 이상 섭취하는 비율은 22.1%에 그쳤다. 2016년 33.1%에서 해마다 감소한 결과로, 초가공식품 소비가 늘고 신선식품 섭취가 줄면서 국민의 식생활이 균형을 잃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곧 식생활 개선이 시급하다는 사실을 알리는 지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영양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대안으로 주목받는 개념이 바로 '영양소 밀도'다. 영양소 밀도란 100kcal 기준으로 해당 식품에 다양한 영양소가 얼마나 풍부하게 들어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영양소 밀도가 높은 식품을 섭취하면 같은 열량을 섭취하더라도 비타민, 미네랄, 식이섬유 등 필수 영양소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섭취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채소, 과일, 통곡물 등의 식품군이 영양소 밀도가 높은 편이며, 이러한 식품을 '밀도푸드'라고 부른다.

밀도푸드는 적은 칼로리로도 다양한 비타민과 미네랄을 풍부하게 제공해 '천연 종합영양제'이다. 특히 가공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식품은 영양소가 균형 있게 포함돼 있어 체내 흡수와 조절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영양제 섭취보다 안전하고 효과적이다. 복잡한 식단 관리를 지속하기 어려운 현대인에게는 밀도푸드를 일상적으로 섭취하는 것만으로도 영양 불균형을 완화하는 실질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대표적인 밀도푸드로는 키위를 꼽을 수 있다. 키위에는 비타민 C, 비타민 E, 엽산, 식이섬유를 비롯해 20여 종 이상의 영양소가 풍부하게 들어 있다. 특히 썬골드키위의 영양소 밀도 수치는 26.7로, 일반 과일보다 최대 11배 높은 수준이다. 썬골드키위는 비타민 C가 특히 풍부해 한 알만으로도 하루 권장량을 충족할 수 있으며, 면역력 유지와 피로 회복에 도움을 준다. 그린 키위는 소화 효소인 액티니딘을 함유해 과식이나 불규칙한 식습관으로 인한 소화 부담을 완화하는 데 효과적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밀도푸드 한 알을 더하는 작은 습관만으로 건강한 식생활을 실천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영양학적 지식도 생활 속에서 꾸준히 실천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오후에 출출할 때 과자 대신 신선한 키위를 간식으로 선택하면 비타민 C와 식이섬유를 자연스럽게 보충할 수 있고, 아침을 거를 경우에는 견과류와 두유로 간단히 영양을 채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 과일이나 채소를 손질해 챙길 여유가 없다면,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컵과일이나 샐러드를 활용하는 것도 현명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영양의 날을 맞아, 매일 쌓아온 식습관을 점검하고 건강한 삶의 기준을 다시 세워보는 건 어떨까. 식품 선택지가 넘쳐나는 시대에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는 일은 현대인 모두가 안고 있는 숙제다. 이럴 때는 초가공식품의 유혹에 흔들리기보다 영양소 밀’라는 기준을 세워 스스로에게 건강한 선택을 선물해보자. 건강은 거창한 결심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매일의 작은 습관이 모여 삶을 바꾸는 큰 힘이 된다. 오늘부터라도 식단에 밀도푸드 한 알을 더하는 작은 실천이, 영양 불균형을 줄이고 만성질환 위험을 낮추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한성호 가정의학과 전문의
한성호 가정의학과 전문의

한성호 가정의학과 전문의

동아대학교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 대한가정의학회 회장
동아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부산대학교 의학석사·의학박사
대한스포즈과학운동의학회 부회장
대한노인병학회 상임이사
전) 부울경비만학회 회장
대한가정의학회 ‘한독학술상’, 한림학술상,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 등 다수 수상
MBC 라디오 등 방송 고정출연으로 대국민 건강정보 전달

 

*본 칼럼 내용은 칼럼니스트 개인 의견으로 매경헬스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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