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글로리' 실제 가해자들 현실에선 무죄
드라마와 다른 현실 상황에 국민들 허탈

[매경헬스 DB]

"1년여간 저희 아이는 한 아이에게 지속적으로 학교 폭력을 당했습니다. 더 놀라운 건 학교 폭력을 이미 인지하고도 학교측에서 방임하고 은폐했다는 사실...심지어 학폭 가해 학생 아버지는 모 초등학교 학부모 회장이 됐고, 해당 학교와 전북교육청이 학폭을 단순 장난으로 마무리하려 합니다"

최근 한 학부모가 학폭 피해를 호소하며 제보한 내용 중 일부다. 학폭이라는 단어가 또 다시 등장했다. 넷플릭스에서 학폭을 주제로 한 드라마 '더글로리'가 국내외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지만, 드라마 속 실제사건 가해자들은 현실에서 전과가 안 남았다. 드라마와 다른 현실에 국민들은 허탈하기만 하다.

학폭은 학교폭력의 준말이다. 학창시절 짧게는 수개월에서 수년에 걸쳐 일어난다. 피해자는 학폭에서 벗어나기 위해 실제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성인이 된 이후에도 후유증이 심각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승민 선릉숲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은 사전 허락을 받고 실제 학폭 피해자들이 살아가면서 겪은 고통과 영향 등을 생생한 사례로 들려줬다. 

"이 환자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조용하고 내성적인 남학생이었습니다. 중학생 때 키가 작고 왜소하다는 이유로 반에서 몇 명이 주도해 ‘왕따’를 당했었구요. 처음에는 몇 명이 함께 놀리는가 싶더니 점차 많은 반 아이들이 괴롭히게 되고 그 정도도 점차 심해졌어요, 반 친구들이 체육복을 숨겨서 교복을 입은 채 체육 시간에 참석하기도 하구요"

"어떤 날엔 급식을 받아 자리로 돌아오는 환자를 실수인 척 밀어 음식을 뒤집어쓴 채 넘어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환자는 지옥 같은 중학생 시절을 보냈고, 고등학교는 자신을 알아보는 친구가 없도록 멀리 떨어진 곳을 찾아 진학했습니다"

한승민 원장은 "국내 연구에 따르면 학폭을 겪은 학생들이 우울증이나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온 결과들이 많다"면서 "연구 결과를 살펴 보면 학폭의 직접적인 피해는 물론 이후 피해자가 겪는 고통이 심각한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환자는 이러한 기분이 고등학생이나 대학생 때에도 지속되었는데, 학교나 길거리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밀어서 넘어뜨릴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이거나 교복 입은 남학생들이 모여 있는 것만 봐도 자신을 불러 세워 욕을 할 것 같아서 돌아가는 등 인생 전반에 걸쳐 힘든 기분이 반복돼 괴로워 했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더 나아가 학폭으로 생긴 트라우마는 PTSD(외상후스트레스장애)로도 이어질 수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 실제 정신과 치료를 받는 성인 환자 중 어렸을 때 학교에서 따돌림이나 학폭을 당한 기억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이 많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PTSD 증상은 과거 당한 트라우마를 자꾸 떠올리거나, 트라우마와 관련된 상황을 피하고, 불안해하고 깜짝깜짝 놀라는 등 다양하게 나타난다. 뿐만 아니라 우울증 등 정신건강 전반에 걸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번 사례도 그렇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까지 한 환자가 병원을 찾아온 이유는 직장 상사의 말투나 생김새가 중학교 때 자신을 괴롭히던 친구와 닮아서였습니다. 그 상사를 멀리서 볼 때마다 너무 무서워서 온몸이 얼어붙는 것만 같고, 갑자기 자신의 뺨을 때릴 것만 같은 기분에 몹시 불안하고 잠을 자기 어렵다고 치료를 원했습니다"

학폭 피해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위 사례만 보더라도 피해자의 고통은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현재진행형이다. 어쩌면 평생 동안 극복하지 못할 수 있다. 지금도 제2, 제3의 '문동은'이 외면받고 있다.

정동청 서울청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역시 이 부분을 강조했다. 정 원장은 "청소년기 학교폭력을 당하면 성인기 이후 대인관계 형성에도 영향을 미쳐 안정적인 대인관계를 형성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며, "자존감이 저하되고, 지속적인 우울감을 경험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단순 신체 괴롭힘을 뛰어 넘어 피해자의 영혼을 황폐화시키는 심각한 행위"라고 규정했다.

특히 한 원장은 최근 학폭 피해자의 고통에 대해 다양한 매체의 보도가 이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학폭에 대한 그릇된 인식이 널리 자리잡고 있다는 점을 꼬집었다. 그는 "여전히 주변에서 '특히 피해자도 잘못한 부분이 있을 거다' '가해자가 어려서 한 실수이니 선처가 필요하다' 등의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어떤 경우에도 우리가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폭력이 발생하면 피해자의 입장과 마음에서 생각하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가해자의 처벌이나 관련 제도의 개선은 그 다음"이라며 "상처받고 고통스러운 학폭 피해자의 마음을 학교가 어루만져주고 사회가 안아주는 것이 가장 우선 돼야, 고통받는 학생들이 하루빨리 회복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게티미이지뱅크]
[게티미이지뱅크]

최근에는 신체를 해하는 물리적인 학폭에서 나아가 정신적인 폭력으로 진화되고 있다. 이승진(동작경찰서 여성청소년과) 경장은 "최근 학폭 양상은 물리적인 괴롭힘 말고도 더욱 다양해 지고 있다"면서 "카톡이나 SNS 상에서 정신적인 괴롭힘 등 사이버 형태로 다양해 졌고, 물리적 폭력 이상의 괴롭힘을 당할 수 있다"고 전했다.

정 원장은 "우울이나 불안 등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은 치료를 통해 좋아질 수 있지만,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학교폭력에 노출된 경우라면 문제는 심각하다"며 "심리적인 문제가 치유될 때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할 수 있고, 또 트라우마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말했다.

반복되는 학폭 가해를 방지하기 위해 전문가들은 주변의 관심을 강조한다. 학폭 자체도 심각한 위험이지만 더 큰 문제는 주변의 방관이다. 앞서 제보에서도 말했듯이 대부분 학교는 학폭이 발생하면 최대한 감추려하고 작은 사건으로 덮으려한다.

누구든 주위에서 학폭을 목격했을때 피해자의 곁에 설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학폭 피해자는 그 상황을 목격한 친구들에게 외면 당하거나 혹은 가해자에 대한 수동적 동조로 따돌림을 당하고 고립이 된다. 가정에선 자녀가 학폭을 당하는지 주의깊게 살펴야 하고, 피해 사실이 확인되면 즉각 담임교사에게 알리고, 동시에 경찰 등 공권력에 적극적인 도움을 구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학폭이 발생하면 피해자의 입장과 마음에서 생각하는 것이 최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폭의 상흔은 몸과 마음에 각인돼 결코 쉽게 사라지거나 치유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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