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게티이미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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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여자배구 이재영ㆍ다영 쌍둥이 자매가 학폭 가해자임을 인정하고 각자 SNS에 반성글을 올려 배구팬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 곧바로 청와대 게시판엔 이들 자매를 퇴출시켜 달라는 청원글까지 오르면서 배구에 관심 없던 국민들까지도 크게 분노하고 있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학폭(학교폭력)'의 악몽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쌍둥이 자매가 한 학폭 수준은 입에 담기 힘들 정도다. 인격 모독은 기본, 부모님까지 들먹이며 욕을 했다고 한다. 심지어 칼을 이용한 협박도 이어졌다. 어린 나이라고 묻고 지나치기엔 정도가 심하다. 피해자는 수 차례 자살 시도까지 할만큼 지울수 없는 트라우마를 안고 고통속에서 살아왔다고 밝혔다. 

학폭으로 인한 상처는 생각보다 크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자살로 이어지는 사례도 여럿 있다. 한 국내 연구에 따르면 학교폭력을 당한 학생의 25%가 자살에 대해 생각한다. 매일 자살을 고민하는 학생도 5%에 이를 정도로 심각한 후유증을 겪고 있다. 자살같은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더라도 피해자가 받는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정도로 심각하다.

정동청 서울청정신건강의학과 원장은 "청소년기에 학교폭력을 당하는 경우 성인기 이후의 대인관계 형성에도 영향을 미쳐 타인을 신뢰하고 안정적인 대인관계를 형성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며, "자존감이 저하되고, 지속적인 우울감을 경험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단순 신체 괴롭힘을 뛰어 넘어 피해자의 영혼을 황폐화시키는 심각한 행위"라고 말했다.

절실하게 도움이 필요한 학폭 피해자들은 사실을 숨기는데 급급하다. 더 큰 폭력이 두려워 부모한테도 사실을 말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혼자 끙끙 앓다가 더 큰 피해를 입는다. 이번 배구 학폭 사건에서도 피해자 부모는 당시 학폭 사실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밝혔다. 심지어 지도하는 감독 조차도 그런 사실을 몰랐다고 말했다. 그러다보니 실제 학폭에 노출된 청소년들이 얼마나 많은지 정확하게 파악하기 조차 어려워 더 큰 문제다. 

정 원장은 "성인이 되서 정신과 치료를 받는 분들 중 어렸을 때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한 기억 때문에 괴로워하는 분이 많다"며 "이는 학교폭력이 이루어지는 동안에만 피해자가 고통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성인이 되서도 고통이 지속되는 경우가 많고, 그만큼 그 피해가 심각하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번 이재영ㆍ다영 쌍둥이 자매의 경우엔 경기 모습말고도 광고나 예능까지 출연하는 등 매스컴에 자주 나와 피해자가 더 큰 고통을 받았다. 가해자들이 아무렇지 않게 지속적으로 TV에 노출되고 화제가 되면서 피해자는 잊고 싶은 과거 트라우마가 자꾸 떠올라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되는 결과를 만들기도 했다. 

정 원장은 "나는 피해를 입고 과거의 기억 때문에 힘들게 지내는데 나를 이렇게 만든 가해자가 아무 일 없듯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사실을 자꾸 확인하게 되니까 피해자는 더 고통스러워진다"며 "이런 경우 피해자가 자신의 트라우마를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 자체가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한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사과 한 마디로 피해자의 고통이 쉽게 치유되지도 않을 것이며, 사과가 아닌 변명은 오히려 피해자의 분노만 자극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가해자가 피해자의 치유에 도움이 될 만큼 진심을 담아 사과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쌍둥이 자매도 SNS에 두루뭉술한 사과문을 올려 오히려 더 큰 비난이 쏟아졌다. 만나서 사과하고 싶다고 밝힌 것 역시 피해자가 받은 상처를 너무 가볍게 인식한 부적절한 말이다. 시간이 지났어도 피해자가 가해자를 다시 대면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학폭 트라우마를 다시 강하게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쌍둥이 자매 아버지는 딸들과 주고받은 문자를 공개하며 피해자들의 마음에 또 한 번 상처를 입혔다. 열흘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국민들의 눈높이를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용서와 복귀' 얘기를 꺼내 더 큰 공분을 불러 일으켰다.

학폭으로 생긴 트라우마는 PTSD(외상후스트레스장애)로도 이어질 수 있다. PTSD 증상은 과거 당한 트라우마를 자꾸 떠올리거나, 트라우마에 관련된 상황을 피하고, 불안해하고 깜짝깜짝 놀라는 등 다양하게 나타난다. 뿐만 아니라 우울증 등 정신건강 전반에 걸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정 원장은 "우울이나 불안 등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은 치료를 통해 좋아질 수 있지만,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학교폭력에 노출된 경우라면 문제는 심각하다"며 "심리적인 문제가 치유될 때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할 수 있고, 또 트라우마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말했다.

그러면서 "학교폭력은 PTSD 뿐만 아니라 우울증 등 정신건강 전반에 걸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며 "PTSD나 우울증 등의 문제가 의심된다면 전문가를 찾아가서 도움을 받고, 증상이 심한 경우에는 약물치료를 신속하게 시작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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