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에 폐암으로 약 2만명 사망
약값 부담에 ‘항암제 불법거래’ 선택하는 환자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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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암 사망률 1위는 ‘폐암’이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폐암 사망률은 2021년 인구 10만명당 36.8명이다. 일년에만 폐암으로 사망한 사람이 2만명에 달한다. 이는 2011년 보다 16.3%가 증가한 수치로 매년 폐암 사망률은 높아지고 있다.

폐암의 가장 주요한 원인은 흡연이다. 하지만 최근 비흡연자의 폐암 유병률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비흡연 여성 폐암 발병원인으로 ‘조리흄’ 등 조리 시 발생하는 유해물질이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일상에서의 폐암 위험은 더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학교 급식실에서 근무하던 급식 노동자가 폐암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고, 이는 산업재해로 인정되기도 했다.

최근 활발한 폐암 치료제 개발로 환자들의 생존기간이 연장되는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 그런데 비싼 약값 때문에 약이 있어도 정작 쓰지 못하는 환자도 많다. 건강보험 급여로 등재된 치료제는 환자 부담금이 적어 비교적 저렴하게 사용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신약의 경우 또는 급여기준이 까다로운 경우 약값이 없어서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약값 부담으로 폐암 치료제를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해외 경로를 통해 불법 온라인 구매도 시도한다. 심지어 효과와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는 해외 복제약을 선택하기도 한다.

◆ 항암제 불법구매라도…간절한 환자들의 선택

회원 수 15만6000명을 보유한 폐암 환자 커뮤니티 사이트.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타그리소(성분명 오시머티닙)’ 복제약 ‘타그릭스’의 온라인 해외 직구 방법을 상세하게 적은 게시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구입 가능한 해외 판매처부터 더 저렴하게 판매하는 곳, 송금방법, 배달기간, 세금까지 적혀 있다. 지난해 4월 작성된 게시글이지만 12월까지 댓글을 통해 많은 문의와 답변이 오갔다. 2020년, 2021년에도 타그리소 복제약을 찾는 게시글과 해당 의약품을 구매해 복용하고 있다는 글이 많다.

포털사이트 환우회 카페에서 올라온 게시글 
포털사이트 환우회 카페에서 올라온 게시글 

국내 약사법에 따르면 전문의약품은 의사의 처방 없이 구매할 수 없고, 온라인 거래도 불법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타그리소의 경우 특허가 만료되지 않았기 때문에 개발사인 아스트라제네카 외에 다른 제약사에서는 해당 성분의 의약품을 제조할 수 없다.

국내 환자들도 이 같은 해외 약물 구매가 불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렇게 불법을 선택하는 이유는 ‘비싼 약값’ 때문이다.

타그리소는 2016년 국내 출시 후 2017년 급여등재가 됐지만 2차 치료제로만 해당된다. 급여 기준에 해당되지 않아 비급여로 처방 받을 경우 약값은 한 달 기준 600만원 선, 일 년이면 7천만원을 웃돈다.

커뮤니티에 공유되고 있는 내용에 따르면 타그리소 복제약은 한 달 기준 30~40만원 대로 오리지널과 최대 20배나 차이가 난다.

이건주 폐암환우회 회장은 “환자들도 불법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며 “더욱이 해외에서 복제되는 약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독약인지 쥐약인지도 모르는데 비싼 약값 때문에 그런 약이라도 구해서 먹으려는 환자의 상황이 안타깝다”고 전했다.

국내 환자들이 불법으로 구매하는 타그리소 복제약은 방글라데시의 한 제약사에서 제조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최빈국에 한해 의약품 특허 및 임상 데이터 보호 의무를 면제해 주고 있다. 방글라데시는 UN이 정한 46개 최빈국에 속하기 때문에 특허 보호 의무가 면제된다. 따라서 방글라데시에서는 타그리소 뿐만 아니라 다른 의약품도 특허와 관계없이 제조해 자국에서 유통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국내에서 구할 수 없는 전문의약품을 ‘희귀필수의약품센터’에 정식 신고 절차를 거쳐 수입할 수 있다. 하지만 타그리소의 경우 이미 국내에 전문의약품으로 유통되고 있어 국내 수입이 불가하다. 또 의약품 특허면제는 방글라데시에 한해 유효하기 때문에 국내에는 타그리소 복제약이 유통될 수 없다.

임준혁 인하대학교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타그리소는 전문의약품으로 현재 국내에서 처방되고 있음에도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지 않아 환자들이 경제적 부담을 이유로 해외 구매 대행을 통해 구입을 하고 있는 점은 의료진으로서 매우 가슴 아프다”고 전했다. 이어 “진행성 폐암의 경우 정기적으로 전문의와 상담, 검사 등을 통해 적절한 약 처방을 받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부디 환자들이 안전하고 효과적인 치료를 다른 부담이나 걱정 없이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 타그리소 4번째 급여확대 도전, 이번엔 이뤄질까

안정성이 확인되지 않은 전문의약품의 불법유통을 막기 위해서는 환자의 약값 부담을 낮춰야 한다. 

환자와 가족들은 ‘타그리소 1차 치료 급여화’를 외치며 국민청원 글을 올리는 등 노력을 이어왔지만 4년째 급여 확대는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이 회장은 “미국 FDA에서 승인받은 신약이 자국에서 급여로 등재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우리나라는 평균 700일이 걸리고, 이는 OECD 국가 중 가장 오래 걸리는 시간”이라며 “의료행위의 궁극적인 목적은 생명 연장인데 돈이 없어서 약 한번 써보지도 못하고 환자들이 죽어가는 상황과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는 약을 불법으로라도 복용하려는 환자들의 상황이 너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한국아스트라제네카는 2021년 세 번째 급여 확대 도전에 실패했고, 지난해 12월 다시 급여확대를 신청하면 네 번째 도전을 던진 상태다.

신약 급여등재에 걸리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제도로 ‘건강보험 신속등재’가 있다. 하지만 타그리소는 해당되지 않는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관계자는 매경헬스와의 통화에서 “타그리소는 이미 2차 치료 급여로 등재됐기 때문에 ‘신속등재’ 대상은 아니다”며 “타그리소에 대한 급여확대는 현재 검토 중이며, 신속하게 검토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답했다.

또 환자들의 해외 복제약 구매와 복용하는 상황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알고 있는 것은 없다”며 “복지부쪽의 정책적인 방향이 나와야 대응을 할 수 있는 사안인데 심평원에서 임의로 (대응)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닌 것 같다”고 답했다.

한국아스트라제네카 관계자는 "현 상황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며, 타그리소 1차 치료에 대한 우리나라 환자들의 접근성이 개선될 수 있도록 정부와 적극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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