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에 도착한 원정대 [사진 =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에 도착한 원정대 [사진 =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전공의에 이어 교수들도 사직서 제출을 결정하면서 환자와 의사 사이의 신뢰도 무너지고 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강대강 대치속에 선천성 심장병 치료와 환자에 대한 편견을 없애기 위해 히말라야까지 동행한 의사들의 이야기, 그리고 의사를 믿고 9년간 등산을 이어온 환우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의 ‘세상을 바꾸는 히말라야 원정대’가 지난달 13일, 4130m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에 오르는데 성공했다고 전했다.

히말라야 트레킹은 누구나 갈 수 있지만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체력이 좋은 사람도 고산증이 오면 선택의 여지없이 하산해야 한다. 국내 등산 경험이 많은 산악회원들도 단체 원정 시 한둘은 베이스캠프까지 가지 못하고 중도 하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번 원정대는 기능성 단심실, 폐동맥폐쇄 등 복잡 선천성 심장병을 가진 청소년들과 보호자, 소아흉부외과, 소아심장과 의료진 등 14명으로 구성됐다. 선천성 심장병을 가진 이들이 해발고도 4000m 이상의 고산 트레킹에 나선 것은 국내 최초이며 국외에서도 발표된 기록이 없다. 이번 원정대원 14명은 고산증 없이 좋은 컨디션으로 트레킹을 완주해 이례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세상을 바꾸는 히말라야 원정대'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에는 ‘복잡 선천성 심장병’을 가진 청소년을 중심으로 구성된 ‘세상을 바꾸는 원정대’가 있다. 선천성 심장병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바로잡기 위한 인식개선 캠페인 일환으로 2016년 결성된 원정대는 9년째 심장병 어린이 가족들과 함께 산에 오르고 있다.

원정대는 한해 평균 20회 이상 단체 산행을 하며 한라산, 설악산, 지리산, 소백산, 태백산 등 전국의 수많은 명산을 올랐다. 히말라야 원정 목표를 세운 원정대원들은 지난해 동계 백패킹 훈련도 진행하며 원정에 대비했다.

히말라야 원정대 대장은 김웅한 서울대병원 소아흉부외과 교수다. 김 교수는 2016년 원정대 결성 후 첫 한라산 산행부터 지금까지 함께해왔다.

김 교수와 함께 최광호 양산부산대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 윤자경 부천세종병원 소아심장과과장 등 의료진도 동행했다. 10대 초등학생 환우 4명과 20대 1명, 그리고 보호자까지 의료진과 함께 총 14명이 히말라야 원정대를 구성했다.

마차푸차레 오르는 원정대 [사진 =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마차푸차레 오르는 원정대 [사진 =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원정대는 해발 2000~3000m 이상의 고지대에서 산소 부족으로 발생하는 급성 반응인 고산병을 예방하기 위해 울레리(2000m), 고레파니(2874m)를 거쳐 푼힐(3210m)에 올라 고소 적응을 마치고 다시 촘롱(2100m)으로 이동하여 원정 8일 째인 지난 9일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3700m)를 지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4130m)에 무사히 올랐다. 원정대는 고산증을 예방하기 위해 식사량부터 취침시간, 씻는 것까지 철저히 관리하고 체온이 떨어지지 않도록 보온에 각별히 신경 썼다.

심장수술을 두 번 받았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강찬율(13/양대혈관우심실기시) 학생은 “대장님께서 아무도 가지 않은 눈길을 앞서가며 길을 만드는 것을 러셀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선천성 심장병 아이들을 위해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러셀처럼 앞장서서 길을 만든 것이라는 말씀에 자랑스러웠다”며 “‘심장병이 있어도 산에 가도 되나요?’라고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그럼요. 우리는 히말라야에도 다녀왔어요.’라고 당당하게 말할 거다”라며 소감을 전했다.

선천성 심장병 “운동해도 됩니다”

선천성심장병을 이겨내고 히말라야 트레킹에 성공한 5명의 주인공 [사진 =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선천성심장병을 이겨내고 히말라야 트레킹에 성공한 5명의 주인공 [사진 =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선천성 심장병은 임신 초기 태아의 심장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구조적 이상이 발생하는 질환이다. 출산 후 시술이나 수술 등의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일반인과 다르지 않게 일상생활이나 운동이 가능하다.

하지만 정확하지 않은 정보와 그로 인한 막연한 불안감과 두려움으로 산전 ‘심장병’ 진단을 받으면 아기를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원정대를 이끈 김 교수는 ‘선천성 심장병’을 단지 수술을 받을 것을 알고 태어나는 것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심장병이지만 수술하면 건강하게 일반인과 똑같이 살 수 있으니 포기하지 말라고 설득하는 것이 진료실에서 하는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복잡 선천성 심장병 환아들로 구성된 히말라야 원정대는 지금까지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가능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일을 그리고 참여자들도 가능할까? 의심했던 일을 이루었다. 학술적으로도, 선천성 심장병이 있어도 가능하다는 근거를 마련했다. 진정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원정대가 되었다. 아이들이 모든 것을 스스로 입증하고 보여주었다”라고 밝혔다.

안상호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대표는 “선천성 심장병으로 산전 진단을 받은 부모가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심장병 아이들이 잘 자라는 가에 대한 것이다”며 “이 아이들이 내 대답이다. 지난 9년 동안 일반인도 오르기 쉽지 않은 수많은 산에 오르며 아이들 스스로 다르지 않음을 증명했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의 히말라야 원정이 널리 알려져 ‘선천성 심장병 아이는 다르지 않을까’라는 오해와 편견이 사라지길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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