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에 걸린 어머니와 딸의 이야기를 그린 웹툰 는 작가 본인의 자전적 내용이 담겨 있다. 58세 어머니는 알코올 중독자였던 남편과 이혼한 뒤 마트에 취직해 새 삶을 꿈꾸지만 출근 첫날부터 치매 증상이 나타난다. 그 무렵 오래 사귄 남자친구에게 프러포즈를 받은 주인공은 들뜬 마음도 잠시, 어머니가 치매 증상을 보이자 심장이 덜컥 내려 앉는다.

‘나라면 어땠을까?’ 하는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신체에 해를 입었다거나 수술이나 치료가 필요한 여타 질환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치매란 인지능력 저하 뿐만 아니라 행동 장애와 건강상의 문제로도 이어지는 가장 두려운 질환이 아니던가. 가족 중 치매 환자가 생긴다면 온 가족의 인생이 흔들리게 된다. 그리고 그중 누군가는 온전히 치매 환자에 매달려 그를 돌보는 인생을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가족은 ‘전문 간병인’이 아니다
대부분의 치매 증상들은 뇌의 이상으로 인한 것이기 때문에 환자 자신은 감정이나 행동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 치매 초기일 경우 노력이 어느 정도 가능하나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점차 환자를 돌보는 가족들의 역할이 중요시된다.

전문가의 간병은 치매 환자가 가진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내 일상에서의 자립과 생활의 질을 높이는 지원 행위이다. 그러나 가족의 간병은 ‘돌봄’ 또는 ‘수발’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린다. 그만큼 가족들의 간병은 생활의 일부로서 이루어지고 있다.

치매 환자가 있으면 가족 중 누군가는 보호자가 되어 24시간 환자를 케어해야 한다. 물론 요양 시설이나 간병인의 도움을 받는 경우도 많지만 환자를 누군가에게 맡긴다는 것 자체에 거부감이 있거나 당연히 본인이 직접 보살펴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 혹은 경제적인 여건이 되지 않는 경우도 다반사여서 우리나라에서는 350만 명의 가족들이 치매 환자를 직접 보살피고 있다.

문제는 가족들 역시 치매 환자 못지않게 고통 받는다는 사실이다.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그 대상이 정상적인 인지 기능을 갖지 못한 경우라면 그 어려움은 감히 수치로 계산할 수 없다. 개인 시간은 물론이거니와 보수도 없고 공로는 인정받기보다는 당연시된다. 고충을 토로할 곳 또한 마땅치 않다. 혹여 다른 가족들에게 이야기를 해도 공감해줄 수는 있을지언정 결국은 그들이 역할을 대신해주지는 않는다.

◆치매로 인한 가족 간 갈등 심화
2016년 대한치매학회의 조사에 따르면 치매 환자 가족의 78%가 간병을 위해 직장을 그만두거나 근로 시간을 줄였다고 답했다. 또한 71%는 치매 환자를 돌보는 일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다고 나타난다.

치매는 병이 병인 만큼 선뜻 간병을 자원하는 경우가 드물다. 가족들의 합의로 전문 시설에 맡겨지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개 치매 환자와 동거해온 가족이 자연스레 ‘낙점’되거나 장남, 장녀라는 이유로 책임감을 안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자신의 부모 혹은 가족이기 때문에 마땅히 해야 할 도리라고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부양 책임을 서로 미루거나 회피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생업이 달려 있고 어쩌면 자신의 인생을 포기해야 하는 일이기에 치매 환자 부양 문제는 쉽게 선택할 수 없는 민감한 사안임은 분명하다.

치매 환자를 둘러싼 사건 사고들 역시 사회적인 문제 중 하나다. 2017년에는 중증 치매 환자인 어머니의 얼굴을 베개로 눌러 살해한 50대가 경찰서를 찾아 자수한 일이 있었다. 또 대구에서는 5년간 치매 남편을 간병해오다 자신마저 초기 치매 진단을 받자 남편을 흉기로 찌른 부인이 붙잡힌 사건도 있었다. 2007년부터 2017년까지 10년간 집계된 유사 사건만 해도 173건에 달한다.

인면수심의 범죄임은 자명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만큼 치매 환자를 돌보는 일이 얼마나 힘들었는가를 짐작하게 한다. 한 조사에 따르면 아픈 가족을 돌보는 간병인 10명 중 3명은 간병 때문에 살인이나 자살 욕구를 느낀 적이 있다고 한다. 간병으로 인한 체력 저하, 수면 부족, 우울증 등 정신적 스트레스와 신체적인 한계를 느껴서가 가장 큰 이유이며, 진료비·요양비·간병비 등 연간 2천만 원에 달하는 케어 비용을 온전히 부담해야 하는 경제적 어려움, 또 언제 어떠한 상황이 닥칠지 모르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이 극단적인 선택으로 몰고 간다.

치매는 쉽게 증상이 완화되거나 완치되는 질환이 아니기 때문에 간병이 장기화될수록 스트레스는 더욱 극도에 달하게 된다. 때문에 환자의 치매 증상을 완화하거나 치료 또는 지연시키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표가 있다면 단순히 가족들이 도맡겠다는 생각보다는 다소 냉정함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전문 지식이 없는 가족들보다 체계적인 치료와 케어가 가능한 전문 시설의 도움을 받는 것이 어쩌면 환자와 가족들 모두를 위해서도 최선의 선택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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