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준 대한아동병원협회 정책이사, 김포아이제일병원장
이홍준 대한아동병원협회 정책이사, 김포아이제일병원장

소아진료 체계가 붕괴할지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사회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최근 가천대 길병원의 소아청소년과 입원 진료 중단 사태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전문의 부족으로 대학병원에서조차 소아청소년 입원, 응급 진료가 어려운 사례는 이미 너무 많아 놀랄 일도 아니다.

소아청소년 전문의, 관련 단체는 꾸준히 "현 상황이 계속된다면 향후 2~3년 이내에 소아 의료 체계가 무너져 환자가 병원을 찾아 떠도는 '의료 난민'이 현실화할 것"이라 경고했었다. 

하지만, 정작 보건당국의 태도는 너무 안일하기만 해 걱정이다. 최근 정부가 소아 의료체계 개선 대책안을 발표한 후에도 여전히 "알맹이 없는 맹탕 대책" "안일함의 극치"라는 의견이 팽배한 형편이다.

이유는 분명하다. 소아 의료체계 개선 대책의 핵심은 전공의에서 시작되는 전문 의료진 확보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이 급감하는 상황에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인력 확보 대책이 가장 시급하다는 점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정작 이번 대책에는 전공의 지원 유도를 위한 지원책이 빠져있다. 전문의가 배출되지 않으면 소아청소년 의료 공백이 불 보듯 뻔한데도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번 '대책'에는 빠진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소아청소년 전공의 부족은 곧장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의 부재로 이어진다. 필수 의료 인력인 소아 청소년 전문의 부재는 곧 대학병원 이외의 소아 의료기관의 소멸을 의미한다.

현재 대학병원을 비롯한 상급종합병원은 입원 전담의를 둬 소아 진료의 구색을 갖추고 있다.

정부는 대학병원에서 소아 진료 시 발생하는 적자를 보전하려 하고, 이에 따라 신규 전문의나 기존의 전문의는 모두 대학병원으로 이동하려 한다. 

결국, 대학병원 이외의 소아 진료 체계는 붕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로컬 병·의원에서는 벌써 열이 나는 아이를 둔 부모와 조부모들의 원성을 듣느라 의료진이 진땀을 빼고 있다. 아픈 아이를 계속 기다리라고만 하니 누구나 화를 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 발열 증상이 나타날 때마다 아이를 안고 사람이 몰리는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게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의 대책이란 것이 전문의 부재로 아동병원과 소아청소년과 의원이 사라졌으니 열이 나는 아이들은 무조건 대학병원으로 이송하라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에게 묻는다.

혹시 대학병원이 개원가의 외래 진료 수요를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이번 대책에 달빛어린이병원을 100개로 확대한다고 했는데 소아청소년 전문의 부재가 심각한 상황에 가당키나 한가? 보건당국은 의료계가 이미 예상하는 이런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모르는 척하고 싶은 것인가? 정부는 소아 진료의 문턱을 높이는 게 정녕 '대책'이라 보는 것인가? 

정부의 소아의료체계 개선대책은 의료 현장을 무시한 탁상행정일 뿐이다.

필수의료를 흔히 내외산소(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라 표현한다. 생명에 직결되는 필수의료의 한 축인 소아청소년과가 사라지고 있는데 정부는 계속 '껍데기 대책'만 발표하니 답답할 따름이다. 

이제부터라도 소아청소년 의료 관련 단체와 머리를 맞대고 디테일한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소아청소년 전공의, 전문의, 학회, 협회의 의견을 두루 경청해 '진정한 대책'을 내놓을 때다. 더 늦어서는 안 된다. 보건 당국이 우리나라 미래인 아이들의 건강과 성장을 위해 의무감과 책임감을 갖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만들어 주길 간곡히 바란다.

[이홍준 대한아동병원협회 정책이사, 김포아이제일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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