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마아파트 사거리에 서서 보니 정말 눈에 띄긴 했다. 건널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붉은 형광색 간판이 서로 마주본 모습 말이다. 얼마 전 ‘표절 논란’을 빚은 노브랜드피자와 고피자의 간판이다. 하필 둘 다 옅은 파란색 건물에 있어서 간판이 더 튄다. 논란이 생길 수 밖에 없었겠단 생각이 들었다. 

은마아파트 사거리에서 본 고피자(왼쪽)와 노브랜드피자(오른쪽). 
은마아파트 사거리에서 본 고피자(왼쪽)와 노브랜드피자(오른쪽). 

지난 달 초, 은마아파트 사거리에 신세계 노브랜드피자가 출점하자마자 진통을 겪었다. 간판 등 매장에 사용한 색이 바로 맞은편 고피자와 유사했기 때문. 곧바로 대기업이 소기업의 아이디어를 베껴 시장에 진출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또 노브랜드피자가 본격적으로 가맹점을 늘리면 중소 피자 브랜드들이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돼 '골목상권 침해'라는 따가운 눈초리도 있었다. 

얼마나 닮았으면 표절 논란이 나왔을까. 궁금해져 대치동으로 향했다. 한창 점심시간일 평일 12시 30분 경. 먼저 노브랜드피자로 갔다. 중앙에는 넓은 바 테이블이, 창가에도 바 테이블이 있어 혼자 식사하기에도 적합해 보인다. 하지만 이 날 혼자 온 고객은 기자 뿐. 2~3명으로 이뤄진 3팀 정도가 식사를 하고 있었다. 4인 테이블도 많았다. 깔끔하면서 군데군데 주황색 조명 등으로 포인트를 준 게 인상 깊다. 전체적으로 ‘미국스러운’ 느낌을 열심히 냈다.

노브랜드피자 매장 전경.
노브랜드피자 매장 전경.

키오스크에서 주문을 하려다 조각피자 메뉴가 없어 좀 헤맸다. 알고 보니 조각피자는 직접 카운터에서 주문을 해야 한다. 조각피자는 전체 피자메뉴 중 3종이 랜덤으로 운영된다. 이 날은 어메이징미트(3,900원), 올어바웃치즈(2,900원), 허니버터 포테이토(2,900원) 3종류였다. 노브랜드피자는 1인용 조각피자보다 2~3인용 크기의 피자를 주력으로 하는 듯 했다. 

어메이징미트 한 조각을 주문했다. ‘가성비’ 피자라길래 기대가 없었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유명 피자 프랜차이즈와 견줄만 하다. 피자를 먹고 싶은데 많은 양은 부담스러울 때 적합할 것 같다. 

노브랜드피자 조각피자 메뉴와 기자가 주문한 어메이징미트 조각피자(오른쪽).
노브랜드피자 조각피자 메뉴와 기자가 주문한 어메이징미트 조각피자(오른쪽).

비교를 위해 바로 고피자로 향했다. 노브랜드피자와 달리 고피자는 1~2명만 앉을 수 있는 작은 식탁으로만 채워졌다. 이 때 식사를 하고 있었던 고객도 한 명. 주변에 학원이 밀집해있으니 학생들이 공부하다 혼자 먹으러 와도 좋겠다. 확실히 1인 고객을 타겟으로 삼은 것이 느껴졌다. 인테리어는 평범하다.

고피자 매장 전경.
고피자 매장 전경.

고피자는 4,900~9,500원의 1인용 피자만 판매한다. 한 명이 배부르게 먹을 정도의 크기다. 노브랜드피자 조각피자로 2~3개 정도 되는 양이다. 주문하고 나서 꽤 오래 기다렸다. 직원이 와 “지금 화덕에 문제가 생겨 피자를 만들 수 없으니 환불해주겠다”고 한다.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대기업에 못 미치는 부족한 중소업체 시스템을 경험하고 말았다.

기자가 주문한 고피자 아메리칸 미트피자.
기자가 주문한 고피자 아메리칸 미트피자.

그냥 돌아갈 수 없어 화덕이 작동될 때까지 기다렸다 다시 방문했다. 노브랜드피자에서 먹었던 것과 가장 유사해 보이는 ‘아메리칸 미트피자’를 선택. 만원 이하의 가격에 걸맞는, 가성비 좋은 피자 맛이다. 그래, 먹다보니 노브랜드피자가 출점했을 때 충분히 고피자가 위기를 느꼈겠다 싶다.

사실 두 매장을 방문했을 때, 간판 색 외에는 서로 비슷하다고 느껴진 부분이 없었다. 고피자는 1인용 피자만 있으나 노브랜드피자는 조각피자에 그다지 주력하지 않는다. 매장 분위기도 다르다. 다른 피자 브랜드도 붉은 색을 쓰는 경우가 많으니, 간판 색이 겹친 건 우연이라 치자. 

하지만 노브랜드피자를 굳이, 가자기엔 찜찜하다. 이마트, 노브랜드, 스타벅스 등으로 신세계는 꾸준히 골목상권 침해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피자로까지 사업을 확대하면서 이번에도 같은 논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을까.

소상공인, 중소기업과의 상생을 약속해 온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다. 그런데도 노브랜드피자를 출점할 때 바로 맞은편 피자 가게와 간판색을 다르게 고려하는 정도의 센스도, 최소한의 배려도 하지 못했다는 게 실망스럽다.

햇빛에 더 붉게 빛나던 노브랜드피자 간판이 너무 태연해보여, 괜히 얄밉다. 

노브랜드피자 앞에서 본 고피자. 
노브랜드피자 앞에서 본 고피자. 

이상 사진 = 김보람 매경헬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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