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입상 경력이 수익과 직결, 약물유혹 이기기 어려워
전문의약품 불법 구매자 처벌받지 않는 현행법도 한 몫

MBC실화탐사대 '난 스테로이드 중독자입니다''편 영상발췌
MBC실화탐사대 '난 스테로이드 중독자입니다''편 영상발췌

1년 전 일부 피트니스선수, 헬스트레이너들이 근육을 키우기 위해 불법으로 스테로이드를 투약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리는 ‘약투’ 사건이 있었다. 이를 통해 불법행위가 근절되나 싶었지만 여전히 불법 투약과 유통판매가 이루어지고 있다.

지난 23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단백동화스테로이드 등 전문의약품을 불법으로 유통 판매한 헬스트레이너 A씨를 구속하고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A씨는 1년 3개월 동안 불법 유통 및 판매로 약 4억6천만 원 상당의 불법 이득을 챙겼다.

단백동화스테로이드는 단백질의 흡수를 촉진시키는 합성 스테로이드로 근육의 성장과 발달을 촉진하는 역할을 하며 ‘아나볼릭 스테로이드(anabolic steroid)’라는 명칭으로도 불린다. 김유미 가톨릭관동대 국제성모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는 남성 성선기능저하증과 같이 남성호르몬 결핍증이 있을 경우, 남성갱년기 증상이 심할 경우 사용하는 치료제다. 이를 생리적 수준 이상으로 투약할 경우 적혈구증가증, 정자 생산 및 운동성 감소, 전립선암 발생 위험 증가, 폐쇄성 수면무호흡증 유도 및 악화, 심혈관질환 위험 증가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어 의사처방 없이 투약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근육 성장과 발달을 촉진, 운동 능력을 향상시킨다는 효능 때문에 보디빌더, 헬스트레이너 등 피트니스 업계에서는 의사 처방 없이 불법으로 투약하고 있다.

◆ 대회 입상이 ‘몸값’ 올린다...끊을 수 없는 약물유혹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뿐만 에페드린 등 약물 불법 투약은 이미 피트니스 업계에서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들이 왜 약물 유혹에 빠지는지 현재 헬스트레이너로 활동중인 피트니스 선수를 통해 들어봤다.

피트니스 선수로 활동하며 헬스트레이너 일을 병행하고 있는 H씨. 그는 십여 년 전 4개월 동안 스테로이드를 투약했었다고 고백했다. 함께 운동하던 동료들의 몸이 믿기지 않게 변하고, 대회에서 항상 지던 친구가 약물의 힘으로 부당하게 1등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분했던 H씨. 억울하고 분하지만 약물의 힘이 아니면 도저히 이길 수 없어 약물의 유혹에 넘어갔다고 고백했다. H씨는 마약과도 같은 스테로이드를 끊기란 쉽지 않았지만 가슴에 지방종이 생기는 부작용을 겪으면서 약을 끊게 되었다고 말했다.

H씨가 꼽은 헬스트레이너들의 약물사용 이유 중 하나는 대회입상이다. 국내에는 해외 못지 않게 많은 피트니스 대회가 있다. 대회에 참가하는 사람은 운동을 좋아하는 일반인도 있지만 헬스트레이너가 대부분이다. 상금도 없는 피트니스 대회에 참가하는 이유는 바로 ‘입상’ 때문이다. 입상경력이 수업료를 책정하는 기준이 된다.

헬스장에서 퍼스널트레이닝(Personal Training)을 받으면 1회당 수업료를 지불한다. 현재 수업료에 대한 규정이 없기 때문에 헬스트레이너의 대회수상 등 경력에 따라 비용이 천차만별이다. H씨는 “굵직한 대회에서 입상하면 수업료가 배로 뛴다. 일반인뿐만 아니라 대회출전이 목표인 선수를 상대로 수업도 가능해진다. 1회 5만원이던 수업료가 20만원까지 올라간다. 대회 입상이 아니면 트레이너들이 자기를 뽐내고 알릴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를 사용하면 근육성장이 빨라지고 운동능력이 향상된다. H씨는 “평소 근력운동으로 100kg의 무게를 드는 것이 최대였다면, 투약 후에는 그 배의 무게를 들 수 있게 된다. 당연히 운동강도가 높아지고 근육이 더 잘 만들어 진다.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을 쏟아 부어도 약물을 사용한 선수는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약물 유혹에 빠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헬스트레이너들의 자발적 불법투약 보다 타인에게 권하고, 강요하는 것이 더 큰 문제로 지적된다. 트레이너의 대회입상 경력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가르친 사람을 대회에 입상 시키는 것도 수업료를 올리고 유명해 질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 도핑테스트 없는 피트니스 대회, 불법 판매자만 처벌받는 현행법

현재 도핑테스트를 진행하는 국내 피트니스대회는 거의 없다. 약물을 사용하지 않은 사람만 참가할 수 있는 ‘네츄럴 대회’도 있지만 도핑테스트는 형식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H씨는 “도핑테스트를 한다고 소변을 받아가고 나서 그 결과는 알려주지 않더라. 음성인지 양성인지 알 수 없고, 다른 사람의 소변을 줄 수도 있고, 실제로 분석을 했는지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재 ‘약사법’은 전문의약품을 불법으로 유통한 판매자만 처벌하고 있다. 구매하고 사용하는 소비자에 대한 처벌이 없다 보니 더욱 쉽게 약물에 접근한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이에 지난 17일 전문의약품 불법유통과 관련해 판매자 뿐만 아니라 구매자도 처벌하도록 하는 약사법 일부개정법안이 발의됐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서정숙 의원(국민의힘) 등은 약사법 일부 개정을 통해 불법으로 구매한 소비자 또한 처벌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했다. 이와 함께 포상금 조항을 개정해 신고자에게 적절한 수준의 포상금을 제공한다는 내용도 포함했다.

제도 개선의 노력과 함께 무분별한 약물 사용에 따른 부작용의 심각성을 알릴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피트니스 업계 일부에서는 약물사용을 반대하고 올바른 피트니스 문화를 위해 정확한 도핑검사를 도입한 피트니스 대회를 여는 등의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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