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 건강이 국가경쟁력] ⑦'중대재해처벌법 시행 3년'…사고는 현재 진행형, 실효성은 물음표

법 시행 후 3년간 총 887건 중대산업재해 발생…943명 사망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 강화에도 재해율 증가, 사망률 변화 無 징역형 선고된 47건 평균 형량은 1.1년…42건은 집행유예 '이익 또는 재산 규모에 연동해 고액 벌금 부과' 필요성 부각

2025-11-26     남연희 기자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3년 10개월이 흐른 현재까지도 근로자 사망 소식이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대한민국의 고도성장 이면에는 수많은 근로자들의 희생이 있었다. 철야 근무로 인한 과중한 업무, 빈번한 산업재해, 그리고 직장 내 괴롭힘 둥이 여전히 근로자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실제로 매년 수백 명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고, 우울증·불안장애·자살이 발생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근로 환경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이제는 '근로자 건강이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인 시대'다. 매경헬스는 근로자들의 건강 관리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해외 우수 사례들을 통해 국내 기업들의 근로자 건강관리와 복지 실태의 현주소를 파악하고 개선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다시는 일하면서 목숨을 잃는 일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3년 10개월이 흐른 현재까지도 근로자 사망 소식이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안되고 제정 논의가 본격 진행된 배경에는 영국의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Corporate Manslaughter and Corporate Homicide Act 2007)' 제정이 큰 역할을 했다. '기업살인죄' 도입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거세지자 법 제정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2018년 12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고 김용균 씨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한 이후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고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됐음에도 사고는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이다.

2022년 1월 27일 법 시행 후 9개월이 경과한 10월 중순, SPL 평택공장에서 20대 여성 노동자가 소스 교반기에 끼어 사망 사고가 발생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이듬해 8월 샤니 성남공장에서도 노동자가 기계에 끼어 목숨을 잃었다. 또 올해 5월에는 SPC삼립 시화공장에서 일하던 50대 노동자의 기계 끼임 사고가 발생하면서 세 번째 사망자가 나왔다. 또 올해 6월에는 고 김용균 씨가 사망했던 사업장에서 하청업체 직원이 공작기계에 끼어 사망하기도 했다.

또 11월 20일에는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배관 찌꺼기를 청소하다가 가스를 들이마신 노동자 3명이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옮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불과 보름 만에 반복된 중대재해였다. 당시 설비 점검을 하던 협력업체 직원들이 불산으로 추정되는 가스를 마셔 1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이다. 포스코 그룹 사업장에서 목숨을 잃은 노동자만 올해만 7명이다.

최근 시민단체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가 고용노동부로부터 받아 공개한 '2022~2024년 중대산업재해 발생 현황' 자료에 따르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시점부터 지난해 말까지 약 3년간 총 887건의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 기간 943명이 사망하고 152명이 부상을 당했다.

사고의 62.2%(552건)가 하청업체에서 발생했고, 사망자 10명 중 6명(602명)은 하청 노동자인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주목되는 점은 사고가 일부 기업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전체 중대산업재해 사고의 25% 이상에 달하는 226건은 상위 10% 기업 73곳에서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여기에는 대형 건설사를 포함해 한국전력공사, 산림청 등 공공기관에서도 반복적으로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우건설과 한국전력공사는 각각 11건으로 중대산업재해가 가장 많이 발생한 원청회사로 꼽혔다. 또 현대건설과 롯데건설도 9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며 그 뒤를 이었다.

지난해 6월 23명의 목숨을 앗아간 아리셀 참사 후 사고 발생 1년 3개월 만인 지난 9월 법원은 사업을 총괄하는 경영책임자인 박순관 대표에게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최고 형량인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그동안 산재 사고에서 가벼운 형을 부과했던 양형 경향과 산재의 빈번한 발생 현실에 비춰보면 형벌의 일반 예방효과가 거의 작동하지 않았다"며 "이 사건과 같이 다수의 근로자가 사망한 사건에서 조차 경한 형이 선고된다면 중대재해처벌법 입법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고 높은 법정형의 처벌 규정을 둔 의의가 무색하게 된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2018년 12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고 김용균 씨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한 이후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고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됐음에도 사고는 현재 진행형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중대산업재해가 거듭 반복되면서 이 법률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법 제정의 본래 취지인 예방 중심의 안전문화 장착과 사업주 및 경영책임자의 실질적 책임 강화가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도 물음표가 붙는다.

실제로 국회입법조사처가 사업장 규모별로 통계를 낸 결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적용 대상에 오른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재해율이 증가하고 사망률에는 변화가 없었다. 2024년부터 법 적용 대상이 된 '5인 이상 49인 이하 사업장'에서는 재해율은 변화가 없는 반면, 사망률은 유의하게 감소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를 요약하면 중대재해처벌법 도입으로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에게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가 강화됐음에도 3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재해자수와 재해율은 증가하고 사망자수와 사망률에는 유의한 변화가 없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산업재해 전반을 억제하는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 숫자로 드러났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시점부터 올해 7월까지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고 가운데 수사 대상 사건 1252건에 대해 전수조사한 결과, 73%(917건)가 수사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건 상당수가 미해결 상태로 남아있어 입법 3년 차가 되도록 법의 취지가 달성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2025년 7월 31일까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은 사건의 1심 판결은 총 53건으로 이 중 최종 확정된 사건은 고작 15건 뿐이었다. 무죄비율은 10.7%로 일반 형사사건 무죄 비율 3.1%의 3배나 높았고, 집행유예율은 85.7%로 일반 형사사건 집행유예율(36.5%) 보다 2.3배로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징역형이 선고된 47건의 평균 형량은 1년 1개월로 중대재해처벌법에서 정하고 있는 하한선(1년 이상)에 머무르고 있었고, 42건은 집행유예 처분을 받았다.

50개 법인에 부과된 양벌 형량은 최저 1000만원에서 최고 20억원까지 분포하고 있는데 평균 1억 1140만원으로 이례적인 1건을 제외하면 7280만원 수준으로 당초 입법 취지와 상반된 결과다. 영국의 기업살인법이 시행된 2008년부터 2019년까지 법인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돼 벌금형이 선고된 23건의 평균 벌금 부과액이 7억 6816만원인 점을 감안하면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이동영 국회입법조사처 환경노동팀 입법조사관은 "중대재해처벌법의 실효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현행 징벌적 손해배상 규정과 양벌 규정에 머무르지 말고 반복적이거나 중대한 산업재해를 발생시킨 기업에 실효성 있는 경제적 불이익을 부과하는 제도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현 정액 벌금 제도는 기업에게 부담이 미미할 수 있기에 매출액이나 이익 또는 재산 규모에 연동해 고액의 벌금을 부과하고 이러한 공적 제재를 민감보험으로 전가하지 못하도록 명확히 규정함으로써 기업의 경제적 기반을 직접적으로 압박할 수 있는 경제적 제재 수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