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명 중 10명 '편의점'에서 약 사는데…제도는 10년 전 그대로

2012년 복지부, 13개 상비약 품목 지정 후 확대 없어 2018년 이후 논의 제자리걸음…의정 사태 등으로 지연 편의점 상비약 매출, 약국 미운영 시간 대에 74.3% 소비자 96.8% "편의점에서 상비약 살 수 있어 편리"

2025-03-31     김보람 기자
[사진 = 연합뉴스]

편의점 안전상비의약품 판매 제도가 시작된지 13년이 흘렀지만 개선은 제자리걸음이다. 실질적으로 소비자가 구매할 수 있는 의약품이 한정적이기 때문. 제도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꾸준히 나오고 있지만 정부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안전상비약 판매 제도는 보건복지부가 약국 외 24시간 연중무휴 점포에서 의약품을 판매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지난 2012년 총 13개 품목을 지정해 시행됐다. 약국은 공휴일, 야간에 문을 닫기 때문에 이런 불편을 해소하자는 취지다. 

당초 판매 품목은 해열제 5종, 감기약 2종, 소화제 4종, 파스 2종 등 총 13개였다. 지난 2022년 타이레놀 2종(80·160㎎)생산이 중단되면서 현재 취급 품목 수는 11개이다. 약사법에 따라 판매 가능한 일반의약품은 지사제, 인공눈물, 화상 연고 등 20종이다. 그러나 보건복지부의 지정이 있어야 나머지 품목을 판매할 수 있다. 

편의점 산업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소비자 접근성이 높아지자 판매 의약품 확대 요구는 커지는 상황이다. 지난 12월 말, 인플루엔자 의심환자가 2016년 이후 최고치에 달했을 때, 편의점에서 감기약 판매도 급증했다. 감기약 매출은 12월 30일~1월 2일까지 GS25에서  전주 동기 대비 34.4% 늘었고 12월 27일~1월 2일까지 CU에서는 27.4% 증가했다. 지난해 기준 전국 편의점 수는 5만 5000여 개, 약국 수는 2만 5000여 개다. 

문제는 품목 확대를 위한 지정심의위원회는 2018년 이후 열린 적이 없다. 지정심의위원회는 안전상비약 품목을 조정·심의하기 위해 시민단체, 약학회, 의학회, 공공보건기관 등의 위원 추천을 받은 10명으로 구성된다. 지난해 10월 국회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장에서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은 "일반약 중 가벼운 증상에 환자 스스로 판단해 시급하게 쓸 수 있는 안전상비약이 의료대란 상황에서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보건복지부는 편의점 상비약 판매에 대한 의약계 우려와 반대, 의정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고려해 아직 검토하지 않는단 입장이다. 

약업계는 편의점 상비약 판매로 이익을 침해당할 수 있음을 반대 이유로 든다. 우려와 달리 편의점에서 상비약이 가장 많이 판매되는 때는 약국이 문을 닫은 심야 시간이다. 한국편의점산업협회에 따르면 안전상비의약품 매출은 2018년 504억원에서 지난 2023년 832억원까지 늘었다. 이 중 가장 많은 판매가 일어난 때는 오후 9시~새벽 1시가 29.3%로 가장 많았다. 오후 5~9시가 27.7%로 그 뒤를 이었다. 약국 미운영 시간 매출이 74.3%다.

의약품 남용 문제를 우려해 편의점 판매를 반대하는 입장도 있다. 약준모(약사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 관계자는 "국민들은 약국보다 더 비싼 값으로 편의점에서 약을 사먹어야 하며, 무분별하게 편의점에서 약을 사먹고 발생하는 부작용으로 오히려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될 국민들이 병원에 가야만 하는 상황만 초래할 수 있다"며 "공공심야약국을 확대하는 등 약국과 약사의 보건의료분야 기여를 확대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고 현명한 정책이라고 판단된다"고 이었다. 

그럼에도 대다수 소비자는 편의점 상비약 품목 확대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지난 2023년 소비자공익네트워크가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 결과, 응답자의 96.8%가 '편의점에서 안전상비약을 구입할 수 있어 이전보다 편리하다'고 답했다. 또 상비약 구매 경험이 있는 응답자의 62.1%는 '품목 수가 부족해 확대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구매 이유에 대해서는 '공휴일, 심야 시간 급하게 약이 필요해서'가 68.8%로 가장 많았다. 

업계 관계자는 "안전상비의약품은 전문 의약품 및 일반의약품과 달리 식품의약품안전처와 보건복지부의 엄격한 심사과정을 바탕으로 이미 국민의 자기투약이 승인된 품목"이라며 "전국 편의점에서 24시간 운영 중인 안전상비약제도는 추가 재정부담 없이 약국의 공백을 보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