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약물 연쇄처방’ 약이 약을 부른다…"해결책은 노인주치의 제도"
나이가 들수록 만성 질환의 유병률은 증가하고 복용하는 약물의 수도 함께 늘어난다. 실제로 65세 이상의 고령자 중 6가지 이상의 약물을 동시에 복용하는 다약제 복용은 80%를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노인의 다약제 복용은 단순히 약을 많이 먹는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치료와 건강 회복이 아닌 ‘노쇠’를 앞당길 수 있다.
예로 약물 복용 후 소화에 이상이 생기면 소화과에서 진료를 받고 또 해당 증상 치료를 위한 약을 처방 받는다. 하지만 당초 어떤 약물에 의한 부작용인지 확인하지 않고 증상만을 기준으로 또 다른 약을 처방한다. 이는 또 새로운 이상 증상을 유발할 수 있고, 다시 약을 처방 받는 형태의 연쇄 처방으로 이어진다. 또 신체적 부작용 외에도 약제비 낭비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도 뒤따른다.
◆ 노인 통합 관리 '노인주치의 제도' 절실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노인 약물 연쇄처방 ‘다약제 복용’을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으로 ‘노인주치의 제도’를 제안하고 있다. 대한가정의학회는 지난 2월 국회에서 ‘노인주치의제’를 주제로 국회 토론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는 대형병원에 노년내과를 설치하거나 다약제 관리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우선적으로 지역사회의 1차 진료 병원에서 노인을 통합 관리할 수 있는 ‘노인주치의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정 교수는 “지역사회의 1차 의료기관에서 노인의 복용약물과 등을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되면 불필요한 약물 복용과 노쇠를 예방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며 “이를 통해 노인이 불필요하게 많은 진료와 병원을 전전할 필요가 없고, 이를 통해 장기용양보험 재정이 절약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해외 사례에서도 노인 진료에 대한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다. 정 교수는 "영국에서 가장 큰 전문 분야는 노인의학으로 의사의 10%가 노인과 의사다"며 "공공의료 측면에서도 노인주치의 또는 노인의 복잡한 의학적 기능적 문제를 통합으로 관리하는 것이 비용 효율적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에 영연방 계통의 의료 시스템을 도입한 나라들은 대부분 노인과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전했다.
◆ 노인 '다약제 복용', 치매처럼 국가 차원의 관리 필요해
일각에서는 가정의학과, 노년내과 등에서 ‘환자 유치’를 시도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과 우려도 있다.
하지만 ‘노인주치의’ 역할 수행을 특정 진료과에 제한을 두지 않으면 된다. 정 교수는 노인주치의 사업에 참여를 원하는 지역사회 의료기관을 신청 받는 방식이 적합하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노인 환자의 약물사용, 노인증후군, 흔한 노인 질환에 대한 교육과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과정은 필요하다”며 치매 진료를 예로 들었다.
보건복지부 지원으로 2009년부터 치매진료의사 전문화 교육이 시작됐다. 치매학회와 대한노인정신의학회가 공동으로 주관하는 해당 교육은 의료계와 정부, 지역사회의 협력으로 10년 넘게 진행되고 있다. 신경과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외의 의사가 치매를 진단하고 관련 진료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해당 교육을 수료해야 한다.
정 교수는 “치매를 개인이 아닌 국가 돌봄 차원에서 해결하겠다는 취지로 탄생한 ‘치매국가책임제’와 같이 노인의 다약제 복용과 노쇠 예방을 위해 정부와 의료계의 적극적인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