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시술 수요자 470~700명 추정되지만 기증 정자 시술 미미
미국·유럽 등 민족 종족 보존 위해 양질의 기증 정자 확보 노력
기고/이경훈 아이비에프 여성의원 대표원장(산부인과 전문의)

이경훈 아이비에프 여성의원 대표원장
이경훈 아이비에프 여성의원 대표원장

의술의 발달로 시험관 시술 성공률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2020년 미국 데이터에 의하면 45세 이상 여성에서도 배아 이식당 임신율이 10%를 넘어섰다.

과거 어렵고 비싼 시험관 시술로 알려진 보조생식술의 결과가 획기적으로 개선되고 있지만 아무리 아이를 낳고 싶어도 타인의 도움 없이는 아이를 갖기 어려운 부부가 있다.
 바로 남편이 무정자증인 난임 부부들이다. 

지난 2019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황나미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무정자증으로 연간 정자 기증을 받아야 하는 시술 수요자가 470~700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처럼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기증 정자 요구와는 달리 국내 유수의 난임 병원에서 2007년과 2021년 사이에 정자 기증을 받아 시술한 건수는 겨우 36건에 지나지 않는다는 발표가 있었다. 즉 무정자증 남성은 많아지고 있지만, 실제 기증 정자를 이용한 임신 시도를 많이 하지 않고 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무정자증 부부의 시험관 시술이 활발하게 진행되지 않는 이유로 여러 사회적 또는 전통적, 윤리적 이유가 추측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믿을만한 정자 은행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과거 박남철 공공정자은행연구원 이사장은 "정자은행은 의료진 개인이나 병원에 경제적 이익을 주는 사업이 아니다"라면서 "비영리 정자은행을 만들어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이와 달리 미국이나 유럽과 같은 선진국을 보면 다소 다른 색깔을 띈 정자 은행 프로그램으로 난임 부부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덴마크는 1990년부터 민족의 종족 보존을 위해 젊은이를 대상으로 덴마크 남성의 유전자 특성을 물려받은 기증 정자를 얻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다. 덴마크 크라이오스 인터내셔널(Cryos International)의 경우 정자 은행을 이용하는 사람 대부분이 '30대 후반, 고학력, 선진국 출신, 직장인 부부'로 나타났다. 가까운 일본에 크리오스가 진출해 기증 정자를 제공하고 있다. 더 나아가 미국 크라이오뱅크는 기증자의 외모와 학력, 성적 증명서 등을 확인하고 기증자 적격 검사를 하여 양질의 기증 정자를 확보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처럼 많은 나라가 건강한 DNA를 가진 양질의 정자를 얻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정자은행의 현실은 활발한 외국의 현황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국내 정자 기증을 이용한 임신시도는 1983년 고려대 의대에서 시작해 1986년 최초의 출산이 이뤄졌기 때문에 거의 40년의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2023년 정자 은행을 통한 기증 및 수증 문화가 활발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2020년말 연예인 사유리씨 사례로 자발적 비혼모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정자 은행의 필요성이 한 차례 제기됐지만, 이는 비혼모라는 사실에만 집중되어 난임 치료를 위한 정자 은행 프로그램이 묻힌 아쉬움이 있다. 물론 비혼모 임신과 같이 새로운 문제 제기를 적극적으로 고민해볼 수는 있지만, 2023년 적절한 기증 정자를 찾지 못한 무정자증 부부의 안타까움 측면에선 정말 생경한 고민이다. 보다 적극적인 정자 기증 문화가 활성화되어 많은 정자가 우리 후손을 위해 보관되고, 이를 윤리적이고 안정적으로 사용되는 가까운 미래를 꿈꿔본다. 이젠 기증 정자가 텅텅 비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지 않고 사회적 필요성을 인정해야 할 시기가 됐다.  이병문 의료전문기자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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