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율리 서울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로부터 듣는 섭식장애 이야기

수년전 거식증을 앓고 있는 이사벨 카로라는 프랑스 모델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나뭇가지처럼 앙상한 팔과 다리, 몸은 마치 해골을 연상케 했다. 그녀는 거식증 캠페인으로 세계적인 유명세를 얻고, 국내에도 거식증의 위험성을 알리기도 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작스레 생을 마감했다. 이후에도 거식증을 앓고 있는 모델의 사망이 이어지자 거식증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신경성식욕부진증이라고도 불리는 거식증은 폭식증과 함께 섭식장애의 한 형태다. 섭식장애는 체중증가에 대한 두려움, 극단적 절식이나 극단적 과식 행동 및 체중감소를 위한 비정상적 행동을 보인다. 국내에서는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진 질병은 아니다. 그러나 외모에 지나친 관심과 낮은 자존감, 마른 체형을 선호하는 사회 분위기 등으로 국내 섭식장애 환자도 증가하는 추세다.

거식증은 모든 정신질환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을 정도로 위험한 질병이지만 치료에 필요한 의료제도가 미비하다. 국내 섭식장애 권위자 김율리 서울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에게 섭식장애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 교수는 현재까지 4,000여 명 이상의 섭식장애 환자를 진료했으며, 2021 Expertscape에서 섭식장애 분야 아시아 지역 1위 연구자에 오르기도 했다.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섭식장애는 어떤 병인가.

몸무게가 늘어나는 것을 비정상적으로 두려워하고, 날씬한 체형에 지나치게 중시해 몸무게에 집착하고, 몸매에 대해 실제와 다르게 왜곡하는 정신질환이다. 심리적 불안을 이겨내기 위해 음식이나 체중, 몸매를 강박적으로 조절한다. 거식증이라고 불리는 신경성 식욕부진증과 신경성 폭식증, 폭식장애 등이 포함된다. 주로 여성과 10~20대 젊은 층에서 나타난다. 거식증의 평균 발생 연령은 16세, 폭식증과 폭식장애는 18세로 청소년 시기 발생한다. 성장이 활발한 청소년 시기 섭식장애를 겪는다면 신체성장과 뇌발달 저하를 가져오고 이른 나이에 골다공증을 유발할 수 있다. 

-원인과 주요 증상은.

거식증은 유전적 요인이 50%를 차지한다. 즉, 태어나기 전부터 어느 정도는 거식증의 위험을 갖고 태어난다. 완벽주의, 강박적인 성향 등 사람의 특성도 원인이 된다. 다이어트와도 관련이 있는데 다이어트를 지나치게 심하게 하는 경우 섭식장애를 병을 촉발시키는 역할을 한다. 주요 증상은 균형 잡힌 식사를 기피하고 특정 음식에 집착하는 것이다. 모든 활동이나 생활의 우선순위를 체중과 연관 짓는다. 그런 집착이 심해지면 사람들과 교류가 뜸해져 고립될 수 있고 합병증을 동반해 극단적인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다.

-거식증과 폭식증의 차이는 무엇인가.

체중을 줄인다는 목표는 같지만 방법과 상황이 다르다. 거식증은 심한 체중 감소를 동반한다. 문제는 만족하는 체중의 하한선이 없다는 것이다. 체중이 줄어도 오히려 체중 증가에 대한 두려움은 더 커진다. 그러다보니 체중이 낮아졌음에도 더 낮추려는 병적인 행동을 해 위험하다. 폭식증은 체중이 정상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단시간 내에 많은 음식을 먹고 섭취 통제력을 잃는다. 그러나 체중 증가를 막기 위해 구토를 하거나 설사약, 이뇨제를 남용, 과도한 운동 등 체중 감량을 위해 노력한다. 

-거식증과 폭식증을 나누는 기준이 있나.

대표적인 것이 체중이다. 일반적으로는 체질량 지수라고 하는데 특정 숫자 이하인 경우 거식증이라고 한다. 유전적 성향도 차이가 있다. 입맛이 까다롭거나 가족의 체형이 마른 경우, 먹을 것에 욕심이 많거나 가족들의 체형이 살집이 있는 경우에 따라 두 질병의 차이를 예상할 수 있다. 그렇지만 거식증과 폭식증 모두 체중감량을 추구하고 살찌는 것에 대해 극단적인 두려움이 있는 것은 같다.  

-거식증과 폭식증을 동시에 겪을 수 있나.

그렇다. 다만 진단은 한 시점에서는 1개 질병만 내릴 수 있다. 저체중임에도 폭식과 보상행동을 동반하면 ‘폭식 구토형 신경성 식욕부진증’이라고 진단 내린다. 정상 체중이면서 폭식과 구토를 동반하면 폭식증이라고 한다. 그리고 폭식증 환자의 50%는 과거 거식증을 겪었던 경우가 많아 병의 형태가 바뀌기도 한다. 
 
-섭식장애가 심해지면 어떤 병으로 발전할 수 있나.

영양부족을 동반하고 뇌신경전달물질의 저하를 초래한다. 그러다보면 신진대사가 줄어들고 장기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해 극단적인 경우 사망까지 이른다. 여성은 무월경이 나타나 난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정서, 감정 기능에도 문제가 생겨 우울증에 빠지기 쉽다. 거식증의 치사율은 5%정도인데 모든 정신질환 중 치사율이 가장 높다. 

김율리 교수 연구팀이 개발한 디지털인지행동치료제. 사진 = 프로그램 화면 캡쳐
김율리 교수 연구팀이 개발한 디지털인지행동치료제. 사진 = 프로그램 화면 캡쳐

-치료 방법은.

섭식장애는 심각한 병이지만 초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완전히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거식증은 저체중이 특징이기 때문에 정상 체중으로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후 정서적, 심리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폭식증은 인지행동치료로 식욕을 안정화하고 섭식관련 행동과 생각을 바꿀 수 있도록 해 정상적인 식습관을 길러줘야 한다. 

-국내 섭식장애 실태는 어떤가.

관심이 매우 부족하다. 체계적인 역학조사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환자 본인이 섭식장애라는 것을 모르고 의료인들 조차 인식도 낮다. 그러다보니 진단이 많이 누락된다. 섭식장애 인프라가 잘 돼 있는 미국도 누락율이 30% 정도 되니 국내는 어떻겠나. 정신질환들이 2016년부터 점차 실손 보험에서 보장되기 시작했는데 섭식장애는 여전히 제도권 밖이다. 

비용 문제로 병원에 오지 못하는 환자도 많다. 섭식장애가 2차적인 합병증이 많고 심한데, 조기에 치료하면 의료비 손실을 막아 전체적인 의료비 절감에도 도움이 된다. 특히 섭식장애는 자살률이 높은 정신질환이고 난임과도 관련 있어 자살과 저출산의 원인이기도 하다. 국가가 관심을 갖고 중대한 질병이라는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 

-섭식장애정신건강연구소장을 맡고 있는데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섭식장애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연구소이다. 2015년 인제대 부설 연구소로 설립됐으며, 섭식장애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와 임상시험, 연구자 양성을 하고 있다. 

-최근 ‘모즐리 인지행동 치료’ 기반 디지털치료제를 개발했는데, 간단히 소개해 달라. 

식욕의 중독적 개념을 섭식장애 치료에 적용한 새로운 인지행동 치료로, 환자들이 일상생활에서 언제든 이용할 수 있는 실시간 개입 시스템이다. 기존 런던 모즐리 병원에서 개발된 프로그램을 비대면 치료가 가능하도록 개발했다. 개입은 대면 혹은 전화로 시행하며, 증상이 가벼운 경우 비대면 개입을 통해 치료내용이 녹음된 파일을 반복 시청하면서 치료 할 수 있다. 과정은 총 8회로 구성됐다. 

섭식장애 완치자의 경험을 동영상 클립으로 만들어 환자에게 보여주는 것이 치료의 핵심이다. 고립된 섭식장애 환자에게 공감을 일으켜 마음의 문이 열릴 수 있도록 했다. 임상 시험에서도 섭식장애 증상이 감소했고 우울, 불안, 스트레스가 감소했다는 결과를 얻었다. 
 
-마지막으로 섭식장애 환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섭식장애 환자들이 체중계 숫자에 집착을 하는 것이 특징인데 이것은 체중만이 현실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도피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대 문화가 자신이 정상 체중임에도 체형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고 만성적인 다이어트를 유발한다. 청소년들의 왜곡된 신체 기준, 외모지상주의 문화들을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자신의 건강한 신체상, 자아상을 가질 수 있도록 가정과 학교, 사회에서 돕는 게 중요하다. 또 ‘나’ 를 다른 관점에서 살펴보며 완벽하지 않아도 다른 긍정적인 면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좋겠다. 섭식장애 환자들은 자신에게 엄격하고 가혹하고 완벽해지려는 경향이 있는데 자신에게 조금 더 관대하고, 완벽하지 않는 자신도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김율리 교수
-서울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세계정신의학회 성격장애분과 공동의장
-국제섭식장애학회 종신펠로우
-섭식장애정신건강 연구소 소장
-모즐리회복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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