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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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IT업계의 '개발자 모시기'와 비슷한 상황이 BT업계에서도 연출되고 있다. 임상시험이 증가하면서 국내외 제약사, 임상시험수탁기관(CRO)이 임상시험 모니터요원(CRA), PM(프로젝트 매니저) 등 임상 인력 영입에 나서며 이들의 '몸값'이 갈수록 치솟는 상황이다. 자원이 풍부한 다국적 제약사·CRO와 '인재 확보' 경쟁을 치르는 국내 제약사·CRO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27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의약품 임상시험 승인 건수는 해마다 증가해 2019년 714건에서 2020년 799건, 지난해는 842건으로 증가했다. 전 세계에서 6위에 해당할 만큼 많은 임상시험이 국내에서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승인된 전체 임상시험 중 제약사 주도 임상시험은 80%(679건), 나머지는 연구자 임상시험이었다. 병원에서 연구 목적으로 진행하는 것보다 제약사가 판매 허가를 받기 위해 시행하는 임상시험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뜻이다. 제약사 주도 임상시험 건수는 전년(611건) 대비 11% 상승해 전체 임상시험 상승을 견인했다.

제약사 주도 임상시험은 노동집약적 산업으로 분류된다. 임상시험을 설계하고 진행 과정을 평가, 수정하며 결과를 규제기관에 제출하는 모든 과정을 CRA·PM 등 전문 인력이 수행하기 때문이다. 제약사의 경우 전체 R&D 비용 중 인건비 비중이 평균 30%가량으로 원재료비, 위탁용역비보다 높은 수준이다. 임상시험만 대행하는 CRO는 인건비 비중이 70∼80%에 육박한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다수의 임상시험이 지연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BT 업계 인력 부족 현상은 더욱 심해질 전망이다. 수요(임상시험)가 늘어난 반면 공급(임상 인력)이 제한적인 데다, 글로벌 임상을 주도하는 다국적 제약사·CRO가 인재 확보 경쟁에 뛰어들면서 임상 인력의 연봉도 하루가 다르게 뛰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임상시험을 가장 많이 승인받은 상위 10개 기관 중 7개 기관이 글로벌 제약사·CRO였다. 한국아이큐비아(1위, 39건), 피피디디벨럽먼트피티이엘티디(공동 4위, 24건), 한국파렉셀(6위, 22건), 노보텍아시아코리아(10위, 19건) 등 글로벌 CRO가 4곳, 한국MSD(2위, 28건), 한국노바티스(3위, 27건), 한국로슈(7위, 21건) 등 글로벌 제약사가 3곳이었다. 상위 10위에 이름을 올린 국내 제약사는 종근당(8위, 20건) 한 곳뿐이었다. 

2021년 임상시험 승인 현황. 사진=식품의약품안전처
2021년 임상시험 승인 현황. 사진=식품의약품안전처

한 국내 CRO 관계자는 "글로벌 제약사·CRO는 신입을 키우기보다 즉시 현장 투입이 가능한 경력직을 훨씬 선호한다"며 "국내 제약사·CRO의 경력직 임상 인력을 고연봉을 제시하며 데려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최근 국내 제약사에서 글로벌 제약사로 이직한 임모(34)씨는 "임상 인력은 대부분 국내 업체에 입사할 때부터 글로벌 업체로 이직하려는 목표가 있다. 임상시험 진행 역량을 갖춘 2~3년부터는 헤드헌터에게 오퍼(이직제안)가 어마어마하게 들어온다"며 "글로벌 제약사·CRO도 골라서 갈 정도로 너도나도 임상 인력을 찾다 보니 10년 차 이상 경력직의 연봉이 1억에 달할 정도"라고 전했다.

임상 인력 확보를 위한 국내 제약사와 CRO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경력직의 빈 자리를 매우기 위해 신규 인력 양성을 위한 인턴십 프로그램을 개설하는가 하면 전문 임상 인력을 찾아 해외로 눈을 돌리기도 한다. 지난 2020년 대만에 지사를 설립한 LSK글로벌PS 이영작 대표는 매경헬스와 인터뷰에서 "부족한 임상 데이터 관리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해외 지사를 설립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늘어나는 임상시험을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 원격 임상 참여와 데이터 수집, 의약품 배송이 가능한 분산형 임상시험(Decentralized Clinical Trials, DCT)이 확대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환자 입장에서 편리한 임상 참여가 가능하고 제약사·CRO는 개발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등의 장점을 갖췄다는 것이다. 미국 제약사인 모더나의 경우, 코로나19 백신 개발 과정에서 스마트폰을 활용해 12주 만에 3만 명의 DCT 대상자를 모집, 성공적으로 임상 연구를 끝마친 바 있다.

한국바이오협회는 지난 3월 '분산형 임상시험 : 장점과 사례 중심으로'라는 보고서를 내고 "분산형 임상시험은 환자가 주도하고 참여하는 형태로 병원 방문을 최소화함으로써 임상시험 대상자 모집 활성화 등에 효과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라며 "이해관계자의 적극적 참여와 정부의 전향적 규제 개선 및 임상 솔루션 개발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각 분야에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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