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의료 인공지능(AI) 역사에 이정표로 남을 중요한 발표가 있었다. 의료 AI 기업인 뷰노의 심정지 예측 솔루션 '뷰노메드 딥카스'가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하 NECA)으로부터 선진입 의료기술로 확정된 것이다.

이번 결정에 스타트업부터 글로벌 의료기기 업체까지 의료 분야에 AI를 접목한(할) 모든 기업의 '눈'과 '귀'가 쏠렸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첫 판매 허가를 받은 지 5년 만에 의료 AI 솔루션이 드디어 '제값'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식약처의 판매 허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의료행위 인정, NECA의 선진입 의료기술 확정의 첫 페이지를 연 곳은 모두 뷰노였다. 특히, 변호사 출신의 임재준 뷰노 경영기획본부장은 지난 3년 간 전에 없던 의료 AI의 임상·허가, 비급여 사용을 위해 헌신해왔다. 현재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보험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으며 의료 AI 현장의 목소리를 전하는 '대변인'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서울 강남구 본사에서 만난 임 본부장은 이번 발표가 "뷰노라는 기업뿐만 아니라 한국 의료 AI의 생태계 확장을 위한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임재준 뷰노 경영기획본부장.. 사진=뷰노
임재준 뷰노 경영기획본부장.. 사진=뷰노

▲ 이번 NECA의 결정에 AI 업계 전체가 들썩이고 있다. 이렇게까지 주목받을 만한 일인가.

크게 두 가지 부분을 강조하고 싶다. 첫 번째는 의료 AI가 국내 최초로 허가 받은 지 5년 만에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았다는 점이다. AI 의료기기가 신의료기술평가 유예 대상으로 확정돼 선진입 의료기술로 결정된 사례는 뷰노메드 딥카스가 처음이다. 평가 유예(2년) 및 신의료기술평가(약 1년) 기간을 포함하여 최대 3년간 의료 현장에서 비급여로 사용되며 임상적 근거를 쌓을 수 있다. 여기서 핵심은 '비급여'다. 신약과 달리 신의료기기는 허가만 받아서는 돈을 벌지 못한다. 비급여 사용은 의료 AI 산업이 자생적으로 성장하는 발판이 될 수 있다.

두 번째는 정부가 요구하는 의료 AI의 '기준'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번 결정이 지금까지의 AI 소프트웨어는 왜 선진입 의료기술로 인정받지 못했는지, 수가 진입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개발·개선해야 할지 판단하는 '이정표'가 될 수 있다. 의료 AI의 '옥석 가리기'가 시작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 뷰노만해도 국내 1호 AI 의료기기인 '본에이지'를 비롯해 '체스트 엑스레이' 등 의료 현장에서 사용 중인 제품이 많다. 대부분 무상 제공인건가.

지금까지는 매출보다 연구 목적으로 활용된 경우가 많았다. 의료 AI를 고도화하기 위해서는 의료진이 경험하고 관련 데이터가 쌓여야 하기 때문이다. 의료 AI 소프트웨어의 상당수는 영상진단 보조 소프트웨어다. X선, CT 영상을 판독할 때 의사를 보조해 문제가 될만한 부분을 색으로 표시하거나, 연관된 질환의 발병 위험도를 숫자로 알려주는 식이다. 의료 현장의 요구를 토대로 개발됐고, 정확도는 물론 실제 사용하는 의료진의 편의성과 만족도도 크다. 다만, 아직은 의사가 단독으로 영상검사 결과를 판독하는 것과 동일한 의료행위라 해석돼 사용 시 병원이 경제적인 이익을 얻지는 못한다. 매출도 적다.

▲ 먼저 개발한 솔루션이 아닌 뷰노메드 딥카스를 선진입 의료기술로 신청한 이유는?

뷰노메드 딥카스는 입원 환자의 전자의무기록(EMR) 등에서 수집한 혈압(이완기, 수축기), 맥박, 호흡, 체온 등 활력징후(vital sign)를 기반으로 향후 24시간 내 심정지 발생 위험을 예측한다. 한국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의료 AI 소프트웨어다. 전에 없던 의료행위를 창출한 'AI 의사'란 점에서 확실한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초기부터 건강보험 수가 진입을 목표로 개발-임상-허가-평가 단계별 계획을 촘촘히 수립했다.

뷰노메드 딥카스 운영 화면. 사진=뷰노
뷰노메드 딥카스 운영 화면. 사진=뷰노

▲ 어려운 점은 없었나.

임상에서 이번 결정까지 대략 3년이 걸렸다. 모든 과정이 처음이었다. 뷰노메드 딥카스는 환자의 활력징후 데이터를 수만 건 학습한 뒤, 측정한 순간만이 아닌 '추세'까지 고려해 심정지를 예측한다. 기존에도 활력징후를 이용해 심정지 위험을 감지하긴 했지만 단순 계산식에 불과했다. 이 둘을 비교하면 뷰노메드 딥카스가 예측 정확도, 오경보율, 조기예측력 등 모든 면에서 정확도·민감도가 훨씬 높다. 다만, 이게 AI의 단점이긴 한데, 어떤 알고리즘을 통해 해당 결과값이 나왔는지를 외부에 공개할 수 없다. 그렇다보니 규제 당국도 일반 의료기기보다 임상, 허가, 평가 과정에서 질문도 많고 검토 시간도 더 오래 걸린 것이다. 

개인적으로 더 힘들었던 건 내부 구성원과 주주를 설득하는 일이었다. 뷰노에 입사하기 전에도 헬스케어 업무를 주로 담당해왔는데, 경험상 초기부터 신의료기술 진입이나 건강보험 수가 적용 등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 판단했다. 약처럼 의료기기도 사람에게 쓰는 것이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관련 업계 종사자, 뷰노 주주, 심지어 일부 구성원들조차 "제품을 개발하고 임상까지 했는데 왜 매출이 발생하지 않냐"고 생각하더라. 악재가 없는데도 뷰노 주가가 하락가고 의료 AI에 대한 회의론·비관론이 쏟아졌다.

▲ 뷰노보다 규모가 작은 의료 AI 스타트업은 더욱 힘든 상황일 것 같다.

첨단 기술을 활용한 의료기기 스타트업이 굉장히 많은데,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걸 알고 뛰어들어야 한다. 약과 의료기기는 똑같은 규제기관에서 관리하지만 많은 부분이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약은 허가를 받으면 비급여로 처방할 수 있지만 의료기기는 판매 허가가 됐다고 즉시 돈을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란 점이다. 소프트웨어를 개발하자마자 영업·마케팅이 들어오면 뭐하나. 할 일이 없다.

규제 개선·개혁은 정답이 될 수 없다. 정부가 환자를 비롯해 국민에게 쓰는 의료기기를 적절히 통제하고 관리하는 건 당연하다. 무분별하게 건강보험 수가를 적용하는 것은 오히려 국민적인 저항을 불러 어렵게 구축한 의료 AI 생태계를 파괴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다행히 최근들어 우리나라도 '중간적 제도'를 속속 마련하고 있다. 새로운 의료 기술을 즉시 평가하기가 어려우니 혁신의료기술, 제한적 의료기술과 같은 제도로 '소프트 랜딩'을 도모한다. 뷰노·루닛·JLK·딥노이드 등 1세대 의료 AI 기업의 시행착오를 거울삼아 2세대 AI 기업은 관련 제도를 잘 숙지하고 초반부터 이를 사업 계획에 반영해 효율적으로 기술 사업화를 이뤄냈으면 한다.

▲미국에서는 새 의료기기도 허가 즉시 비급여로 사용할 수 있다. 암상 근거와 수익을 쌓은 다음 우리나라에 역수입하는 전략도 있었을텐데.

실제로 그런 기업도 하나 둘 생기고는 있다. 미국을 포함한 해외 진출은 모든 기업의 관심사다. 다만, 뷰노는 사업의 시작은 한국이어야 한다는 창업자들의 의지가 강했다. 기술력에 대한 자부심만큼 이를 한국에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크다. 의료 분야에서 한국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인정받는 '브랜드'가 됐다. 서울아산병원, 서울대병원이 쓰는 의료기기라고 하면 다른 나라에서도 모두 고개를 끄덕일 정도다. 뷰노도 한국을 대표하는 의료 AI 기업이 되길 원한다. 수준 높은 의료진과 개발자가 힘을 모은다면 한국의 의료 AI도 머지 않아 세계적인 브랜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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