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준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조성준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분노憤怒.

분개하여 몹시 성을 냄. 또는 그렇게 내는 성.

[유의어]격노, 격분, 노여움.

요즘 살면서 분노할 일이 참 많아졌습니다. 출근하면 긴장할 일들 투성이고 등교해도 경쟁할 일들만 있습니다. 집에 가는 길, 혹은 집에 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때가 때인 만큼 적당히 어디 편히 쉴 곳 하나 찾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뉴스나 기사를 통해 접하는 기사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실제로 올해 3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코로나19 이후 국민의 일상변화조사’ 결과를 보면 이러한 경향이 더욱 뚜렷합니다. 코로나19 이전보다 ‘걱정과 스트레스’를 많이 느낀다고 응답한 비율이 무려 78%였고, ‘불안과 두려움’을 더 많이 느낀다는 비율은 65.4%, 오늘 이야기하려고 하는 ‘분노 또는 혐오’를 더 많이 느낀다는 비율은 59.5%에 달했습니다. 안 그래도 긴장하고 빡빡하게 살고 있었는데, 더 화가 잘 나는 세상에 살게 되었습니다.
 

‘집단적’ 외상후울분장애 (PTED. Posttraumatic Embitterment Disorder)

일상에서 겪는 부정적 사건에 의해 촉발되는 일종의 ‘적응장애’

당연해 보이기는 하지만, 작금의 사태를 어떻게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까요? 현재 우리가 속해 있는 모든 집단은 연속되는 부정적 사건에 의해 일종의 ‘적응장애’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스트레스 요인을 해소할 방법은 마련도 하지 못하고 맞이하고 있습니다. 처한 상황이 힘든 것은 알겠는데, 평소보다 많은 일들이 정당하지 못하거나 굴욕감을 주는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울분, 분노가 자주 보이고 자기비하, 무력감, 패배감 등이 뒤따르기도 합니다.

PTED는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정식 진단명으로 부르지는 않지만, 불공정함에 대한 만성적인 분노와 박탈감 등의 심리적 요인이 강조된 개념입니다. 삶에 위협을 주거나 죽음에 가까운 사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불안, 무력감을 보이게 됩니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경험하는 작은 일에도 분노, 화, 울분 등을 호소하기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마치,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여유가 없어 보이고 화가 나 보입니다.
 

여유餘裕의 틈

사람의 ‘마음’은 원래 어떤 ‘상황’이 있으면 으레 ‘반응’을 합니다. 마음이란 원래 그렇습니다. 그런데 화가 나면 이 반응의 방향이 더 즉각적이고 인내심이 없어지게 됩니다. 그러면 상대방이라도 이 날이 선 반응을 받아주고 포용해주어야 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상황’과 ‘반응’속에 ‘여유(餘裕)의 틈’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 틈이 비록 작을지라도 어디든 비집고 들어가기 시작하면, 섰던 날들을 무디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나도 살고 나의 마음도 살고 내 주변도 살고 우리가 살 수 있습니다. 아주 작더라도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여유(餘裕)의 틈’을 떠올려보고 상기하고 다시 우리의 태도 곳곳에 심어야 합니다. 원래 이 ‘여유(餘裕)의 틈’은 참 빠르게 번져 나가고, 번져 나가고 나면 진득하게 우리 옆에 붙어 있곤 하기 때문에 시작이 조금 힘들지 어렵지 않습니다. 원래 ‘여유(餘裕)의 틈’은 우리 각자가 가지고 있던 것이니까요.

[조성준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본 칼럼 내용은 칼럼니스트 개인 의견으로 매경헬스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매경헬스에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억울한 혹은 따뜻한 사연을 24시간 기다립니다.
이메일 jebo@mkhealth.co.kr 대표전화 02-2000-5802 홈페이지 기사제보

저작권자 © 매경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