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여름, 학창시절 꽤나 친하게 지내던 후배가 오랜만에 연락을 해왔다. 마흔을 넘기기 전에는 꼭 결혼을 하겠다며 서둘러 웨딩 마치를 올렸던 그녀의 결혼식장에서 만난지 꼭 10개월 만이었다.

“제가 나이가 있어서 빨리 임신을 하려고 산부인과에 갔었거든요. 난소 기능 검사 결과가 0.3이라고 하던데 정말 많이 안 좋은 거에요?”

당시 만 나이로 38세였던 그녀의 난소 기능 수치가 0.3이라면 같은 연령대의 하위 10% 이하 구간에 속하는 수준이며, 나이로 따지자면 만 48세 중앙값에 해당되니 난소 기능이 심각하게 저하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난소 기능, 흔히 난소의 나이라고 표현하는 검사는 혈중 항뮬러관 호르몬(Anti-Mullerian hormone, AMH)이라는 수치를 의미한다. 여성은 누구나 출생 당시 10만에서 20만 개 정도의 난자를 가지고 태어나게 되는데, 이 중 매달 배란이 되면서 사라지는 수를 제외하고도 많은 수가 노화과정을 통해 빠른 속도로 소멸이 된다. 그 뿐 아니라 난소 절제 수술이나 항암 방사선 치료, 흡연, 불규칙한 생활습관 및 스트레스 등의 요인에 의해 이전에는 정상이었던 난소 기능이 급격하게 저하되기도 한다.

항뮬러관 호르몬(Anti-Mullerian hormone, AMH) 외에도 뇌하수체 호르몬의 일종인 난포 자극 호르몬(Follicle stimulating hormone, FSH)과 초음파에서 확인되는 동난포 수(Antral follicle count, AFC) 가 난소 기능 판단의 중요한 지표가 되는데, 한가지 항목 만을 보고 판단하는 것 보다 여러 지표를 함께 분석하는 것이 정확한 난소 기능 평가에 도움이 된다.

흔히 난소 기능이 떨어지면 조기 폐경을 걱정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낮은 항뮬러관 호르몬(Anti-Mullerian hormone, AMH) 수치를 가지고 있어도 평균 폐경 연령인 만 50세 전후까지 폐경이 되지 않은 사례도 빈번하다. 오히려 난포자극 호르몬(Follicle stimulating hormone, FSH) 수치가 올라가게 되면 폐경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특히 생리를 시작한 직후 측정한 난포자극 호르몬(Follicle stimulating hormone, FSH) 및 난포 호르몬(Estradiol) 수치가 기준치 이상으로 상승해 있다면 배란 시기가 앞당겨지면서 평소 28일 안팎이던 생리 주기가 25일 안쪽으로 짧아지기도 한다. 이렇게 생리 주기가 단축된다면 본격적인 난소 기능 저하가 시작된 것은 아닌지 의심 해 보는 것이 좋다.

후배의 경우 이미 2-3년 전부터 생리 주기 s단축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심각한 난소 기능 저하가 진단되어 바로 시험관 시술을 시작하기로 했지만 생각보다 결과는 좋지 않았다. 과배란을 해도 난자가 간신히 1-2개 나오거나 아예 난자가 나오지 않는 주기도 있어, 매달 자연주기 시험관 시술(과배란 약물을 사용하지 않고 자연적으로 자라는 난포만을 채취하는 방법)을 반복하였다. 어렵게 생성된 배아를 하나씩 모아, 이제 겨우 첫번째 배아 이식을 앞두고 있는 상태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선배 말 듣고 난자라도 얼려 놓을 걸 그랬어요.”

뒤늦은 그녀의 후회에 나도 좀 더 적극적으로 난자 동결을 권유하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다.

난자 동결이란 결혼 및 임신 계획이 없는 미혼 여성이 난소 기능 저하가 되기 전 미리 본인의 난자를 채취하여 동결해 놓는 것이다. 항암치료나 방사선 치료를 앞두고 있는 암환자들에게서 일반적으로 시행되어왔으나, 최근에는 만혼 추세와 맞물려 건강한 여성이라도 결혼 계획이 늦어질 경우에 난자 동결을 선택하기도 한다.

2017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여성의 평균 초혼 연령은 30.2세로 10년 전에 비해 2살이나 더 늦어졌으며, 평균 출산 연령은 32.8세(2018년 기준)라고 한다. 남성의 초혼 연령 역시 높아진 것은 사실이나, 남성의 경우 나이가 임신율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은데 비해 여성은 만 30세를 기점으로 임신율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만 35세가 넘어가면 임신율 하락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하며, 생식세포의 노화가 진행되어 염색체 이상이 있는 난자의 수가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한다. 만 35세 이후를 고령 임신으로 정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시 말해 오로지 임신과 출산에 대한 생물학적 이로움 만을 생각하자면 한창 공부하고 일할 나이인 20대 또는 늦어도 30대 초반 까지는 임신을 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러한 강요 자체가 여성들을 결혼과 출산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출산 시기를 늦추기 위해 계획된 난자 동결은 아직까지는 그 역사가 길지 않으며, 의학적인 이점(임신 성공률)에 대한 통계 자료 역시 아직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적어도 본인의 출산 시기를 결정함에 있어 남성에 비해 선택의 폭이 좁을 수 밖에 없는 여성들에게 일종의 자율성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계획된 난자 동결은 한번쯤 고려해 볼 수 있는 선택지가 아닐까 한다.


[에이치아이 여성의원 김민재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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