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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취중진담이 정말 진심일까?
기사 입력 : 2019.08.30 10:39 | 수정 : 2019.09.02 22:51

허성태 다사랑중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술에 취한 주인공이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말과 행동을 하며 상대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다. 술의 힘을 빌려 사랑을 고백하는 내용의 노래 ‘취중진담’ 역시 여러 번 리메이크되며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취중진담이란 술에 취해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는다는 의미의 고사성어다. 사실 취중진담에는 사랑을 고백하는 것과 같이 좋은 감정을 내뱉는 경우도 있지만 서운하거나 미워하는 감정이 드러나는 불편한 경우도 포함된다. 술에 취해 나오는 말과 행동은 함께 술을 마시는 대상에게 어떤 감정을 가졌는지에 따라 크게 영향 받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취중진담은 정말 그 사람의 본심일까?

술을 마시면 알코올이 가장 먼저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예측하고 억제하는 뇌의 전전두엽 부위를 마비시킨다. 그간 억제하고 눌러왔던 감정이나 이성적인 판단이 술에 의해 억제되면서 평소 하지 못했던 생각과 감정들이 말과 행동으로 튀어나오게 되는데, 이게 바로 ‘취중진담’이다.

문제는 그 사람이 어떤 생각과 마음을 가졌는지를, 그게 본심인지를 본인이 아닌 다른 이가 알기란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나는 내 마음에 대해 잘 알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결국 술에 취해서 하는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에 대해 말하는 당사자는 물론, 상대방은 알 길이 없으니 취중진담을 그 사람의 본심이라 판단하긴 어렵다. 취중진담을 진심이라는 철학적 개념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알코올이 뇌에 작용한 과학적인 현상으로 바라보는 건 어떨까.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더 있다. 달달한 노랫말로 여심을 자극하는 노래 ‘취중진담’의 내용과 달리 현실에서는 오히려 이런 취중 고백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최근 미혼남녀를 대상으로 실시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여성들이 가장 받기 싫은 이성의 고백 1위가 '취중 고백'(43.2%)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유를 살펴보니 고백한 상대방이 다음날 기억을 하지 못하거나 또는 술김에 저지른 실수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취중 고백을 시도하는 마음에도 거절당했을 때의 두려움을 술김으로 핑계삼기 위함은 아닐는지.

관대한 음주문화를 가진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술 때문이라는 변명이 통하는 것 같다. 술 마시고 한 말이 취중진담이 될 수도 있는 걸 보면 말이다. 하지만 ‘술에 취했으니 이 정도는 감안해 주겠지’라는 생각으로 계속 술을 핑계 삼다간 술자리에서 경계 대상이 되는 것은 물론, 주변 사람들까지 잃을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중국 송나라의 유학자인 주자가 제시한 주자십회(일생을 살아가면서 후회할만한 열 가지 가르침) 중에는 술에 취해 함부로 말하면 술이 깬 뒤에 후회한다는 뜻의 취중망언성후회(就中妄言醒後悔)라는 말이 있다. 만약 오늘 누군가에게 속마음을 전하고 싶다면 “술 한 잔 하자”라고 말문을 열기보단 맑은 정신으로 진심을 전하는 용기를 내보길 바란다.

[허성태 다사랑중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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