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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과] 믿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

기사입력 : 2019.05.13 11:28  |  기사수정 : 2019.05.13 11:33


믿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 병원에서 환자들이 잘못된 믿음으로 피해를 보는 사례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환자가 폐암 3기는 불치병이라고 믿으면 그냥 불치병이 된다. 불치병이라고 믿고 치료하지 않으니 암은 급격히 진행이 된다. 가족이나 의료진이 아무리 설득하여도 환자의 믿음을 꺾지 못한다. 무조건 치료를 하라는 것이 아니다. 검증된 치료가 있을 경우 분명 치료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치료의 선택과 최종 판단은 환자가 하는 것이 옳다. 어떤 환자들은 효과적인 치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성이 강한 항암제를 부정한다. 의료행위는 약이든 수술이든 간에 부작용, 합병증, 후유증이 있다. 중병일수록 효과는 미미해 보이고 부작용은 커 보인다. 환자 입장에서 보면 효과보다 부작용이 두렵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치료를 거부하는 환자가 엉뚱한 치료를 받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빠진 사람의 논리는 간단하다. 확실히 살려낼 자신 없으면 포기하란다. 어차피 죽을 건데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한다. 믿었던 현대의학이 완치할 수 없다는 솔직한 고백에 대한 실망의 표현이다. 그렇게 잘났다고 떠들어 대는 현대의학이 내 병 하나 고치지 못한다니 실망이 클 수밖에 없다. 실망은 현대의학을 제외한 수없이 많은 한방치료, 기치료, 자연치료, 면역치료 등 검증되지 않은 치료에 눈을 돌리게 만든다. 솔직하게 완치가 어렵다고 말하는 현대의학은 믿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지푸라기도 잡고 싶은 환자의 마음을 이용하여 완치된다고 속삭이는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 믿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 한동안 보이지 않던 환자는 질병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어 후회한다.

강원도 산골 사시는 분이 결핵치료를 받게 되었다. 길이 험해서 버스가 하루 2번만 다니는 산골이다. 어찌된 영문인지 건강 보조식품 판매원은 하루 3번 다녀간다. 한두 번 거절하다가 몸이 성치 않으니 몸에 좋다고 하면 귀가 솔깃해진다. 건강기능식품도 지나치면 좋지 않다. 위장장애 정도는 극복 가능하다. 혹시라도 약리 작용이 있는 약제가 섞인 경우라면 큰일이다. 결핵약과 상호작용을 일으켜 약효가 떨어지거나 부작용이 생겨 치료제인 결핵약을 못 먹게 된다. 결핵에 걸리면 잘 먹어야 된다는 믿음 때문에 온갖 보약을 먹느라 정작 결핵약을 못 먹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잘 못된 믿음으로 건강을 해치는 경우이다.

일본영화 ‘엔딩노트’는 실제 있었던 사건이다. 정년퇴임한 아버지가 위암 4기 판정을 받고 1년 남짓 살아가는 동안 딸이 만든 다큐멘타리 영화이다. 병원을 다니면서 죽음을 맞을 준비와 하지 못한 일,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후회 없는 생을 보낸다. 장례식 준비도 하고 여행도 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들도 만나고 직장생활로 가족들과 소홀히 했던 소중한 시간을 함께 보내는 감동적 이야기이다. 질병의 고통을 함께 나누며 삶과 죽음을 생각하게 한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되는 대사 한마디가 남아 있다. 주인공이 유기농 쥬스를 마시면서 농담반 진담반 하는 말이다. ‘평생 술과 담배로 몸을 혹사시켰는데, 말기 암에 걸려 유기농 쥬스 먹는다고 몸이 좋아질지 모르겠다. 그래도 가족의 성의니까 맛있게 먹는다.’ 라고 하면서 즐겁게 가족 식사를 하는 행복한 모습이 담겨 있다.

영원히 사는 사람은 없다. 사람들은 오래 살려고 하면서 인생을 낭비한다. 어떤 치료를 받건 받지 않건, 시간이 되면 사람은 죽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기적이 일어 날 수 있다고 믿는다. 특히 검증되지 않은 치료가 기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착각한다. 왜냐하면 검증된 치료는 검증된 효과만 보이기 때문이다. 기적은 일어 날 수 있다. 그러나 기적은 검증되지 않은 치료에 매달려 남은 인생을 허비하는 사람에게 일어나지 않는다. 로또 당첨처럼 소문은 있지만 현실에서 나에게 기적은 잘 일어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잘못된 믿음은 기적을 바라며 남은 인생을 헛되게 보내는 것과 같다. 믿는 자를 이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 호흡기내과 염호기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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