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최신 칼럼

[내과] 중환자실 앞에서 심쿵하다

기사입력 : 2019.07.01 13:44  |  기사수정 : 2019.07.08 10:18


중환자실은 병원의 핵심이다. 사람의 생사가 갈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연과 애환이 많다. 사경을 헤매다가 멀쩡하게 걸어 나가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멀쩡하게 걸어 들어와서 운명을 달리 하는 경우도 있다. 중화자실 앞에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아 청원 경찰이 자리를 지킨다. 의료진은 불철주야 환자를 살리기 위하여 노력하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라 한계가 있다. 최선을 다하지만 걷잡을 수 없이 질병이 악화될 수 있는 곳이 중환자실이다. 중환자실에는 이런 말이 있다. 어릴 때 집 나간 아들이 가장 효자이다. 조심하라는 말이다.

환자가 나빠진 경우 의사는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지만, 보호자가 보기에는 부족하기 마련이다. 며칠 밤을 새면서 치료과정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던 배우자나 자녀들도 갑자기 부모의 악화에 당황하기 마련이지만 지금까지 진행 과정을 알기 때문에 십분 이해한다.
돌아가신다고 하니 급히 연락되어 나타난 집 나간 아들과 시집 간 딸이 문제다. 면회 한번 오지 않다가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큰소리다. 지금까지 효도하지 못한 것을 한꺼번에 쏟아 붓는다. 형제에게는 말할 것도 없다. 지금까지 모신 형제에게 수고했다는 인사는 언감 생신이다. 왜 부모님을 이지경이 되도록 치료를 하지 않았냐고 다그친다. 그리고 화살을 의료진에게도 돌린다. 막무가내로 내가 효도를 못했으니 살려 놓으라는 것이다. 어떤 말도 통하지 않는다. 누구도, 가족도 말리지 못한다. 가족이란 그런 거다.

지금까지 성심껏 모신 죄밖에 없는 아들과 며느리는 죄인이 되는 순간이다. 평소 관심이 없었던 가족, 친척들이 열혈 효자가 된다. 가족이 많으면 일단 좀 조심해야 한다. 같은 형제자매라도 모두 사는 형편이 다르고 부모에게 받은 정(情)도 다르기 때문에 생각이 모두 다르다. 가족관계가 복잡하거나 재산 문제가 있는 경우 더욱 난감하다. 형과 동생의 말이 다르다. 가족 간의 다툼을 의료진에 대한 원망으로 투사하는 경우도 있다. 유언이라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조른다. 어쩌다 외삼촌이라고 하는 사람이 끼어드는 경우 조심해야한다. 재혼이나 배다른 형제가 있다면 요즘 말로 심쿵하다.

목소리 큰사람이 이긴다. 부모에 대한 안타까움이 클 것이다. 가족에게는 부족한 효심을 탓하며, 의료진에게도 가장 적극적이다. 의료진에 대한 목소리의 크기와 항의의 수준이 효심의 척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환자실에는 이런 말이 있다. 중환자실 보호자 중에 가장 무서운 사람은 치료기간 내내 잘 나타나지 않다가 환자가 악화되어 마지막에 나타나는 집나간 아들이나 시집간 딸이다. 그런 보호자를 보면 심쿵하다. 한편으로 평소 부모를 가까이 모시지 못한 사람들의 안타까움의 표현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 호흡기내과 염호기 전문의]
[ⓒ 매경헬스 & mkhealth.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