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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과]의사도 기적을 바란다

기사입력 : 2019.06.03 09:02  |  기사수정 : 2019.06.24 09:53


환자들은 기적을 바란다. 의사도 배움의 깊이와 무관하게 기적을 바란다. 왜냐하면 기적이 일어난 환자를 평생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의사가 뭘 잘해서 보다 의사와 환자의 운이 잘 맞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처음부터 암이 뇌로 전이된 폐암 4기 환자였다. 의학적 통계에 따르면, 폐암이 뇌로 전이된 상태는 3개월 정도 생존 가능하다. 그러나 그녀는 약 3년 동안 병원에 다니면서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를 설명하고 또 실천하면서 세상을 떠났다. 기적 같은 일이다.

중년을 넘긴 그녀는 강남의 유명한 술집 마담이었다. 가난에 한이 맺어 밤낮없이 돈을 벌었다. 그런데 번 돈을 한번 써보기도 전에 죽음을 맞게 되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낙심하여 흔들릴 법도 한데, 날벼락 같은 4기 폐암은 오히려 그녀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자신에게 할 일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내게 얼마나 살지 솔직히 말해 달라고 했다. 통계수치를 말하는 내 목소리가 떨렸다. 담담하게 듣던 그녀는 이제 무엇을 하면 될지 물었다. 치료가 잘 되었을 경우 얼마간 연장이 될 수 있다는 말에 희망을 걸었다. 방사선 치료와 동시에 항암치료를 시작하였다.

그녀는 결혼하여 아들과 딸을 낳고 이혼하였다. 형편이 어려워 아이들을 전 남편에게 맡기고 자신은 사업을 하였다. 1980년대에 경제 붐과 자신의 노력으로 재산을 모으게 되었다. 전남편은 재혼하여 또 아이를 낳아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딸에게 연락이 왔다. 동생이 집안 형편이 좋지 못해 대학을 포기했다는 것이다. 공부를 잘하는 편이라 더욱 안타까웠다. 그녀는 자신이 학비를 내겠다고 하여 아들을 대학에 보냈다. 이제 졸업을 앞두고 있다. 어려서 돌보지 못한 자식과 자기처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길을 찾고 또 찾았다. 하루는 코리안헤럴드 신문에 난 아들의 기고문이 실린 신문칼럼을 오려 갖고 왔다. 대학생인 아들이 신문에 기고했다. 그리고는 한참을 울고 갔다. 아들이 졸업 할 때 까지만 살면 좋겠다는 말을 남기고 그녀는 서서히 사라졌다.

한참 뒤에 딸이 찾아왔다. 딸은 어머님을 대신하여 편지 한 통을 두고 갔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나는 편지에 그녀가 목표를 이루었음을 짐작하였다. 폐암이 뇌 전이 되면 오래 살지 못한다. 의학적 통계는 숫자 일 뿐이다. 그녀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마무리 하느라 예외적으로 의학적 통계에 들지도 못하고 오랫동안 살았다. 때로는 의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다. 인간의 의지는 어떤 항암제보다 더 강력하다. 사람과 세상에 대한 사랑이 암의 진행도 멈추게 한 것 같다. 머리가 다 빠져 창피하다며 모자를 쓴 그녀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의사도 기적이 일어나길 바란다.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 호흡기내과 염호기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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