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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과]요양급여대상여부 확인요청서

기사입력 : 2019.04.02 11:59  |  기사수정 : 2019.04.23 13:30

중환자실에 70세 노인이 입원하였다. 폐렴이 심해져 급성 호흡곤란증후군에 빠졌다.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 인공호흡기를 달고 급히 항생제를 사용하였다. 폐렴이 패혈증을 일으켜 혈압이 잡히지 않는 패혈성 쇼크가 발생되었다. 한 가지 항생제로는 노인의 생명을 구하기 어렵다고 판단되어 항생제를 복합하여 처방하였다. 다음 날 부터 혈압이 오르고 인공호흡기 산소 요구량도 60%로 낮출 수 있었다. 다행히도 할아버지는 날이 갈수록 좋아져 입원 5일째 인공호흡기를 제거할 수 있었다. 퇴원 후 환자는 외래를 방문하여 무서웠던 중환자실 기억을 하면서 딸과 함께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씀을 하셨다. 의사가 된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다.

이런 느낌도 잠시, 몇 개월이 지난 뒤 의료보험공단으로 부터 중복 투여된 항생제 삭감 통지가 왔다. 환자가 죽어도 좋으냐고 항의 해봤지만 배양 검사 결과가 없어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중증의 폐렴에는 단일 항생제로 부족하다는 것이 이미 학계에서 입증되어 있고, 진료지침을 복사해서 이의 신청을 해도 받아들어지지 않는다. 환자가 어떻게 되더라도 복합하여 투여하지 말라는 것이다.

중환자실에는 매일 같이 중증의 환자들이 입원한다. 단일 항생제를 사용하여 치료하려고 하지만 환자의 경과가 간단치 않다. 보호자와 상의하여 항생제 중복투여를 설명한다. 소위 "비급여 사용 동의"를 구한다. 하지만 이런 동의서는 얼마가지 않아서 "요양급여 대상여부 확인요청서" 로 바뀌어 날라 온다. 보험이 되는데도 비급여로 사용하였으니 반환을 청구하는 것이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달라진다는 속담처럼 보호자가 야속하다는 마음이 든다. 하긴 소송을 하구도 매일 진료 오는 사람도 있다.

한 두번 이런 일을 겪고 나면 진료가 위축된다. 환자야 어떻게 되든지 삭감을 조심해야 한다고 다짐을 하지만 실천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다. 오늘은 47세 중증 폐렴에 흉막 삼출, 심낭삼출이 동반된 남자가 입원하였다. 내일 "삭감에 대한 소견서"나 "요양급여대상여부 확인 요청서"를 쓰는 한이 있더라도 환자의 목숨을 살려야 한다. 의사는 공단 재정만을 생각하는 의료보험공단 직원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들의 부모님이 이러한 상황에 처하면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하다.

삭감과 요양급여 대상여부 확인 요청서는 선의의 의료를 위축시킨다. 환자에게 의료를 불신하게 만들고 최선의 치료를 유보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단이 필요하였다. 병원 경영을 책임 맡고 나서 ‘비급여 처방’을 원천적으로 없애버렸다. 전산 처방화면에서 선택이 불가능하도록 제한한 것이다. 의사들로부터 날선 비난을 감수하였다. 의사들을 설득하는 논리는 간단하였다. 선의의 의료를 함에 있어 죄를 짓는 듯 한 일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 병원 재정도 생각한 조치이다. 최근에는 ‘요양급여 대상여부확인 요청서’를 쓰지 않는다. 다만 진료비 재심, 이의신청 결과 통보서가 쌓여 있다. 언젠가는 대한민국의사로서 환자만 생각하며 진료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면서 퇴근을 미루고 ‘삭감에 대한 소견서’를 적는다.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 호흡기내과 염호기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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